[현장 In] '자궁 내 태아 사망'…의사의 과실과 법적 책임 사이

입력 2018-01-12 07:30   수정 2018-01-12 09:11

[현장 In] '자궁 내 태아 사망'…의사의 과실과 법적 책임 사이
'업무상과실치사' 산부인과 의사 1심 실형…항소심은 무죄 선고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독일인 A(39)씨는 2014년 한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같은 국적의 남편을 따라 인천에 머물다가 출산이 임박해지자 집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해 11월 24일. 임신 40주 6일 차였다.
당일 오후 10시부터 입원해 분만을 준비한 A씨는 다음 날 오후 2시 30분이 돼서야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해당 산부인과 의사 B(43·여)씨는 2시간 뒤 통증을 완화하는 무통 주사를 A씨에게 놔줬고, 태아의 심장박동 수도 확인했다.
그러나 1시간 30분가량 지나 약효가 떨어지자 A씨는 재차 통증을 호소했다. 의사가 다시 심장박동 수를 확인했을 때 태아는 엄마의 자궁에서 이미 심정지로 숨진 상태였다.
검찰은 A씨에게 무통 주사를 투여하기 전인 당일 오전 3시간 동안 태아의 심장박동 수가 급격히 낮아지는 현상이 5차례나 있었다며 B씨가 이를 알고도 이후 1시간 30분가량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태아가 숨졌다고 판단했다.
B씨는 검찰 조사에서 "당시 태아의 심장박동 수를 세심하게 지속해서 관찰했다면 제왕절개 수술 등을 했을 가능성은 컸다"고 진술했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씨는 지난해 4월 1심에서 금고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사실상 검찰의 판단을 모두 받아들여 B씨의 과실과 태아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모두 인정했다. 무통 주사를 놓은 직후부터 태아가 사망한 시각까지 1시간 30분 동안 A씨가 아무런 의료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정상인 임신부의 경우에도 진통 1기에는 적어도 30분 간격으로 태아 심장박동 수를 측정해야 한다"며 "아무런 의료 조치를 하지 않은 1시간 30분 동안 산모와 태아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빠른 제왕절개 수술로 태아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강제 노역만 하지 않을 뿐 징역형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구속돼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 보상을 할 기회를 B씨에게 줘야 한다며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1심 판결 결과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는 산부인과 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고의 책임을 전부 의사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집단 반발했다.
의사 1천여 명은 지난해 서울역 인근에서 '전국 산부인과 의사 긴급 궐기대회'를 열었고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8천35명의 탄원서를 받아 인천지법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9개월간 심리를 진행하며 고심했다. 이번 사건이 드물지 않게 종종 발생하는 '자궁 내 태아 사망' 사건의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10일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의사 B씨는 수척한 얼굴로 자신의 사건번호가 불리자 피고인석 앞에 섰다.
생년월일을 확인하는 재판장의 질문에 간단하게 답변한 뒤 다소 창백한 얼굴로 재판장의 선고 이유를 들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미국 소아과학회와 미국 산부인과학회는 고위험 임산부의 경우 15분 간격으로 태아 심장박동 수를 확인하도록 권고한다"며 "피고인은 1시간 30분 동안 태아의 심장박동 수를 측정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태아의 심장박동 수가 줄어들고 회복되지 않으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소규모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피고인이 수술을 준비하는 데 1시간가량 걸렸을 것으로 보인다"며 "제왕절개 수술을 했더라도 태아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자궁 내 태아 사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실제 원인 불명인 경우가 많다"며 "이 사건 태아의 경우 부검도 하지 않아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고 8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의 변호를 맡은 서울의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항소심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며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의사의 과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단체는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억울한 의사의 누명이 벗겨져 다행"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해당 의사는 성실하게 환자를 진료하고 태아의 분만을 도왔을 뿐인데 살인범처럼 몰려 교도소에 갇힐 뻔했다"며 "모든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한 번쯤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만큼 이번 판결은 매우 의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항소심 재판부도 B씨의 과실을 인정했다며 대법원에 상고해 그의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다시 다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2일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왔지만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건인 만큼 법리를 다시 다투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s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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