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독일이 작년 9월 24일 총선을 치르고서 신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지 110일째를 맞았다. 역대 최장의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다.
그 사이 '유럽의 여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유럽의 대표 리더십을 빼앗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발언권과 존재감이 급속히 약해지는 형국이다.
그리스 채무위기와 금융지원 정책을 둘러싼 전례 없는 논란,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강도가 셌던 난민 위기에도 버텨낸 그다. 그러나 신정부 구성이라는 진정한 난제 앞에 분명한 갈림길에 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순풍을 타면 독일 역사상 최장 집권 총리 반열까지 기대할 수 있지만, 역풍을 맞으면 최악에는 집권 연장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애초 집권 다수 기독민주당ㆍ기독사회당 연합을 이끄는 메르켈 총리는 자유민주당, 녹색당 간 연정 협상의 성공을 기대했다. 하지만 자민당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판이 깨졌고 지금은 사회민주당을 소수당 파트너 삼은 현 대연정을 다시 한 번 꾸리려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유럽전문 영문매체 더로컬은 신정부 구성이 장기 지체되자 노골적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 매체는 10일 대연정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신정부 출범은 빨라야 3월이라며 새로운 정부의 예산 편성과 승인이 늦어져 여러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는다고 전했다.
또 "독일경제가 잘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냐 라고 혹자는 말할지 모르나 그렇게 일이 간단하진 않다"며 톱클래스 스포츠 육성, 경찰력 보강, 사회기반시설 건설, 유럽 개혁, 연방군 해외 운용, 정부연구 사업 진행이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썼다.
독일 대표통신사 dpa는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 간 연정 협상 타결을 통해 정치적 교착상태를 종식하고 싶어한다고 메르켈 총리의 태도를 짚고 "협상이 길어질수록 총리 권한은 약화한다"고 진단했다.
이 통신은 설혹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이 협상을 타결한다고 해도 신정부는 4월에야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예상하고 메르켈 총리는 대연정 협상에서 고소득자 증세, 건강보험 일원화, 유예된 난민 가족 수용 여부 같은 주요 정책 쟁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내 폭넓은 공감대 아래 협상에 임하는 기민기사연합과 달리 사민당이 당내 좌파와 청년그룹의 대연정 반대를 돌파해야 하는 부담이 큰 것도 메르켈 총리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AFP 통신 보도에 따르면 랄프 슈테그너 사민당 부당수는 트위터를 통해 대연정 협상 타결에 대한 "회의론은 과거에도 당연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당연하다"고 밝혔다.
사민당 청년당원그룹 리더인 케빈 퀴네르트는 유력 주간지 슈피겔에 "전당대회를 낙관한다. 우리는 대연정을 막을 수 있다"고도 했다. 사민당은 오는 21일 특별 전대를 열어 본협상 진행 여부를 판단하고, 이후 만일 본협상을 해서 연정계약서 초안을 타결하면 이를 두고 당원투표 등 동의 절차를 밟는 걸 고려 중이다.
메르켈 총리가 덧붙여, 면밀히 챙겨야 할 핵심은 여론 동향이다.
AFP는 독일 시사잡지 포쿠스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로는 대연정을 다시 원하는 비율은 단지 30%였던 데 비해 재선거 선호 비율은 34%였다고 전했다. 또 제1공영 ARD 방송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연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45%였지만 나쁜 선택이라고 판단한 이들은 52%였다.
집권 14년 차를 맞은 자신에 대한 피로감에다 신정부 구성 난항에 따른 여론 악화까지 겹치는 건 메르켈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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