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메리카니쿠스'의 노래…강남옥 시인 30년만의 귀환

입력 2018-01-15 07:08   수정 2018-01-15 08:09

'호모 코메리카니쿠스'의 노래…강남옥 시인 30년만의 귀환
미국서 살며 쓴 시집 '토요일 한국학교'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장시간 비행 직후 열두세 시간의 시차까지 업고 노동집약적 근로에 충실하며 자녀 교육을 이민의 주요인으로 내세우나 일부 호모 아메리카니쿠스들은 돈벌이를 위장한 슬로건이라 지적함" ('호모 코메리카니쿠스, 그들은' 중)
강남옥(59) 시인은 새 시집 '토요일 한국학교'(모악)에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을 '호모 코메리카니쿠스'라 지칭한다. 그 자신 역시 '호모 아메리카니쿠스'다. 시인은 자조적으로 풍자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슬픔과 쓸쓸함 또한 누구보다 잘 안다. 이번 시집에 실린 55편의 시들에는 재미교포들의 욕망과 애환이 켜켜이 쌓여있다.
경북 청도 출신인 시인은 198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박기영, 안도현, 장정일 등과 함께 '국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첫 시집 '살과 피'를 내며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릴 무렵 돌연 미국 이민을 택한다. 1990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해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 통신회사에서 일하면서 주말마다 한국학교에서 한국계 차세대들과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온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시인으로서 모국어로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럴 때마다 한 편 한 편 적어온 시들에는 긴 세월을 견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누나 집 내려와 집 밥 한 끼 먹고/시차 웅덩이 깊은 도시로 돌아가는 동생을/프린스턴이나 해밀턴 같은/외국 이름의 기차역에서 배웅하노라면/ㄷ.ㅣ.ㅇ.ㅏ.ㅅ.ㅡ.ㅍ.ㅗ.ㄹ.ㅏ./자모음 한 획 한 획/맨 목덜미에 따갑게 문신된다//디아스포라,를 나는/아슴포레 사라지는 것들 붙들 수 없어, 그저/아! 슬포라!/한숨짓는 탄식으로 독해한다" ('귀가' 중)
아무리 미국 시민권을 얻고 미국 사람이 됐다고 해도 디아스포라, 끝내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은 신산하다.
"그 청년은 다혈질이며 한국계였다/불량기 있는 흑인과 다투다 총 쏘아버렸다/온 필라델피아 팥죽 솥처럼 들끓을 때 청년의 아버지 뉴스에 나왔다/"나는 미국 시민입니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다."/이 장면 나가자마자/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전화벨 목쉬도록 운다/"당신은 결코 미국인이 될 수 없어! X까는 소리 집어치워!"/익명의 거친 목소리/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철제 탁자 흔들었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중)
그래도 '토요일 한국학교'의 풍경은 따뜻하다.
"일주일에 고작/세 시간 하는 우리, 토요일 한국학교/빠진 이처럼 몇은 결석/띄어쓰기 다 틀린 작문같이 몇은 지각/"썽생님, 소쩍새가 모하는 거야?"/고급반 한국어 시간 미당의 시 한 수 도전하다 접는다//왼손으로 한국어를 쓰는 아이들/책을 말아 머리통 쥐어박으면/"It's illegal 썽생님"/농담까지 한다" ('토요일 한국학교' 중)
시인은 시집을 여는 '시인의 말'로 "남들 전(廛) 걷는 노을 파장에 어리숙한 전 펴는 까닭은 버려질 뻔했던 이 가엾은 시편들을 태 묻었던 곳에서 살라주려는 내 시인 된 도리로서의 긍휼 때문이다"라고 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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