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일단 숨통 텄지만…은행계좌 언제 끊길지 몰라

입력 2018-0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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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일단 숨통 텄지만…은행계좌 언제 끊길지 몰라
이달 말까지 실명시스템 전환, 기존 가상계좌 모두 넘겨받기로
은행들, 거래소 계좌 유지에 부담…현금화 차단돼 '가상공간' 묶일수도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홍정규 기자 = 정부가 논란 끝에 가상계좌의 실명 확인 시스템 전환을 예정대로 진행키로 하면서 가상화폐 거래는 일단 숨통을 텄다.
가상계좌를 이용한 기존 투자자는 이달 내 마련되는 실명시스템으로 옮겨 투자할 수 있다. 신규 계좌 발급이 중단된 잠재적 투자자도 매매 수단이 생긴다.
다만 가상화폐 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투기성 자금이 몰렸고, 거래소들이 은행 지급결제 시스템에 편승해 투자자들을 부추긴 탓이라는 정부의 판단은 그대로다.
정부는 은행들의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 제공·관리에 자금세탁 등의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지 엄격히 따지기로 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진 않지만, 은행 스스로 부담을 느껴 계좌 제공을 중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가상화폐의 현금화 자체가 막힐 수도 있다.



◇실명시스템 이달내 도입…정치적 부담 작용한 듯

정부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실명시스템을 예정대로 이달 말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국적, 나이, 실제 이름이 확인되는 자행(自行·같은 은행 간) 거래만 거래소와 투자자 사이에 허용하는 것이다.
가령 한 은행에 계좌를 둔 거래소를 통해 가상화폐를 매매하려면 투자자도 같은 은행에 계좌가 있어야 한다.
실명 전환이 도입되면 기존 가상계좌로는 거래소에 더 입금할 수 없다. 거래소에서 출금만 가능하다. 실명으로 전환하면 입·출금이 자유롭다.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는 가상계좌에는 입금 제한뿐 아니라 과태료 부과 등 불이익이 주어질 전망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출금마저 일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14일 "신규 가상계좌 발급은 중단됐지만, 기존 가상계좌는 실명 전환해야 한다"며 "실명 전환은 은행들의 의무"라고 말했다.
애초 몇몇 은행은 가상계좌의 실명 전환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실명 전환이 예정대로 이뤄지는 것은 정치적 부담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가상계좌를 없애고 실명 전환을 백지화하는 것은 거래소 폐쇄와 비슷한 효과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를 언급했다가 정부는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그동안 가상계좌 발급이 중단돼 가상화폐를 사지 못했던 잠재적 투자자들도 실명시스템을 통해 가상화폐를 사고팔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실명시스템서 계좌 유지는 은행의 선택…"부담 만만찮을 것"

가상계좌의 실명 전환이 은행 지급결제 시스템을 통한 가상화폐 거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투자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를 위해 가상계좌를 통한 투자금을 실명시스템으로 옮겨주지만, 이 시스템이 영원히 유지될 것으로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은행은 거래소와의 계좌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연장 여부를 정하는데, 거래소가 투기성 자금을 끌어들였다는 지적을 의식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특히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지난 8일부터 진행 중인 특별검사가 은행들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으로 알려졌다.
FIU와 금감원의 이번 검사는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점검하는 목적이다. 이를 토대로 FIU는 강도 높은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방침이다.
미국 주요 대형 은행은 테러·마약 등의 자금세탁을 우려해 가상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주지 않고 있다. 국내 은행들도 이번에 제정될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자금세탁 가이드라인에 따른 부담을 무릅쓰고 거래소 계좌를 유지할지, 차제에 계좌를 닫을지는 각 은행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다만 계좌를 폐쇄하더라도 갑작스러워선 안 되며, 거래소나 투자자가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예고돼야 한다고 정부는 덧붙였다.


◇모든 은행이 계좌 끊으면 현금화 막혀…"가상공간에 묶일 것"

극단적인 경우 모든 은행이 시차를 두고 거래소와의 계좌 계약을 끊을 수 있다.
이에 따른 '루프홀'로 각 거래소의 법인계좌를 통한 거래가 가능하지만, 정부는 법인계좌 운영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규제할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수기(手記)까지 동원된 가상화폐 거래는 법인계좌의 본래 존재 목적이 아니다"며 "자금세탁과 마찬가지로 강력히 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은행과 거래소의 통로가 단절되면 가상화폐 거래로 아무리 큰 이익을 내도 현금화가 어려워진다.
가상화폐가 말 그대로 블록체인 기술이 응용된 가상공간에만 묶이고, 은행 지급결제 시스템과는 괴리된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애초 가상화폐의 취지가 은행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한 불신 아니었느냐"며 "그러면서 은행 시스템에 편승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zhe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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