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유로화 4%↑, 달러화 7%↑…통화당국 골머리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 저금리로 상징되는 금융완화 장기화로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현금유통량이 4천200조 원 이상으로 불어나 각국 통화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16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이나 구미에서 지폐나 동전 등 현금 유통량이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속도로 늘어나면서 작년말 440조 엔(약 4천224조 원)에 달했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2017년 말 은행 예금에 예치되지 않은 채 시중에 유동되는 엔화 지폐는 106조 엔을 넘어서며 전년 동기보다 4% 늘었다. 동전은 1% 정도만 늘어나 5조 엔에 약간 못 미쳤다.
고액권인 1만 엔권이 유통량의 93%를 차지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달러화의 현금유통량은 2017년 말 1조6천억 달러(181조 엔)다. 미국 밖에서 수요가 증가한 영향 등으로 전년동기 대비 7% 늘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유로화 현금유통량은 작년 11월 말 시점으로 1조1천억 유로(148조 엔)로 집계돼 전년 같은 시점에 비해 4%가 늘었다.
각국의 공통점은 저금리라고 니혼게이자이가 전했다.
각 지역에서 금융완화로 예금 금리가 떨어지자 고액권 지폐가 가계에 머물고 있다는 설명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등 금융완화를 지속하면서 물가 상승이나 예금금리 인상에 따른 기회손실 위험이 낮다는 인식이 형성돼 현금 선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현금 유통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0% 정도로, 10% 수준인 구미의 2배에 달했다.
이는 일본 국세청이 부유층 자산 파악에 나선 영향으로 관측되고 있다. 도쿄의 한 세무사는 "탈세하려는 의도까지는 없지만, 당국에 자산을 상세히 노출하고 싶지 않은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갑자기 상속 사유가 발생할 경우 친척에게 배분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언제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현찰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런 현상은 자금흐름 파악을 하는 통화 당국에는 두통거리다
시중에 유통되는 지폐나 동전이 더 팽창할 경우 금융완화 출구 정책을 구사하더라도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했을 때도 기대 이상 현금이 움직이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돈세탁 등에 악용되기 쉬워 고액권 지폐를 폐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하버드대 케네스 로코프 교수는 현금의 증가가 탈세 등 지하경제 확대를 보여준다고 지적하고, 일본에 1만 엔권 폐지를 권고했다.
주요국 현찰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유럽에서 금융완화의 정상화를 향하면서 증가율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다나카 오사무 수석이코노미스트의 견해다.
tae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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