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버스에서 한 중년 여성이 다급하게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
"XXX 할 시간인데 두 정거장 남았어. 큰일 났네. 얼른 뛰어갈게. 틀어놓아."
잠시 후 이 여성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문을 박차고 나가 있는 힘껏 내달린다. 여성의 통화를 본의 아니게 들었던 승객들 사이에서는 키득 웃음이 터져나온다. XXX는 현재 안방극장 최고 화제작이다.
또다른 중년 여성은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느라 문제의 드라마를 '본방사수' 할 수 없다. 그는 퇴근 후 집에 가서 스마트폰을 통해 다시보기로 이 드라마를 시청한다. 제시간에 드라마를 볼 수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단다.
"혼자서 조용히 집중해서 볼 수 있으니 더 좋다."
시네마천국이 화려하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드라마천국이다. 소파와 한몸이 돼 채널을 돌려가며, 혹은 이어폰을 낀 채 이동하면서 볼 수 있는 드라마는 매일 24시간 공급된다. 언제, 어디서든 걸린다. 아예 안 보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보는 사람은 없다. 일단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것도 드라마다.
그러다 보니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콘텐츠는 드라마 줄거리다. 인기작의 경우는 방송 시작과 동시에 분 단위로 내용이 신속하게 쏟아진다. 그러한 '하이라이트 기사'들에는 엄청난 클릭이 모이고, 다양한 시청평이 달린다. 내 소감을 표출도 해야겠고, 남들도 나처럼 느낀 것인지 확인도 하기 위해 드라마 이름이 적힌 깃발 아래 사람들은 떼로 모여든다.
요즘은 드라마를 보며 '실시간 댓글'을 올릴 수도 있다. 축구 경기를 다 같이 모여서 보는 게 더 재미있듯, 드라마를 보며 누군가와 손가락으로 채팅을 해야 더 재미가 있다고 느끼는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판이 더 커졌다.
그런 와중에 지난 14일 '상상암 파동'이 벌어졌다. 살충제 계란 파동만 파동이 아니었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 "상상암입니다"라는 대사 한마디가 나온 것뿐인데 그 즉시 인터넷 세상 실검(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순식간에 한국인이 가장 많은 관심을 표출한 용어로 등극했다. 이날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43.2%가 나왔다. 시청률 1%가 흔한 세상이다. 방송사는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며 입이 귀에 걸렸다.
'상상암'에 대한 댓글은 7대 3 정도 비율로 갈렸다. 어이가 없다며 욕을 퍼붓는 쪽이 7이다. "더 이상 이 드라마 안 보겠다"는 결연한 선언(?)도 이어졌다. 이해한다는 쪽은 "슬퍼서 가슴이 찢어진다"는 반응이다. 높은 시청률만큼 반응도 극과 극, 화끈하다. 그런데 검색창에 '상상암'을 쳐본 것은 양쪽이 다르지 않을 터다. 역시 드라마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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