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농업진흥공사 30년 전 매입하고도 등기 누락…등본·지적도에 없어
땅 주인 "다른 곳으로 이전도 불가능…과수원 못 할 판" 호소
(논산=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세종시에 사는 정모(48)씨 부부가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의 과수원 부지에 마음이 가기 시작한 건 2016년이다.
다섯 필지로 된 1만3천㎡의 땅은 배 농사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 설치된 장애물 등으로 구석구석 살피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등기부 등본·토지이용계획서·지적도 등을 꼼꼼히 들여다본 결과 문제는 없었다.
문서 상으로도 깨끗한 데다 공인중개사나 땅 주인에게서 별다른 이야기도 없었던 터라 정씨 아내는 지난해 초 정상적으로 매입했다.
농사 등으로 한푼 두푼 모은 4억여원을 완전히 지불하고서야 정씨 부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과 마주하게 됐다.
정씨는 "과수원 한복판을 가로질러 지하에 농수로가 매설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등기부 등본이나 지적도에서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던 것"이라고 항변했다.
해당 농수로는 한국농어촌공사 소유로 확인됐다.
30년 전인 1988년 농어촌공사 전신인 농업진흥공사가 이 지역 토지 중 265㎡를 당시 땅 주인에게 적법하게 매입하고서 지하에 매설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토지가 공공용지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러나 등기가 누락돼 있다는 점이다.
매수 이후 지적 분할과 등기 이전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정씨 아내를 빼고 그간 땅 주인이 2차례 바뀌었는 데도 바로잡히지 않았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등기가 누락됐다"며 "당시 전산 사정 등이 여의치 않은 이유로 추정할 뿐 명확하지는 않다"고 전했다.
정씨가 농수로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으나, 지형상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농어촌공사 측 입장이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을 지나는 노선이어서 다른 곳으로 이설할 경우 일부 논에 물 대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씨 부부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공사를 포함해 여기저기에 백방으로 민원을 넣어봤지만, 원하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아 막막하다"며 "땅에 소독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어 과수원을 운영하지 못할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정씨 부부에게 '사인 간 토지 매매에 한국농어촌공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 이유로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고충민원 회신을 보냈다.
현재 검찰은 이 사건 진정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이런 일이 또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토지가 두 동강 난 채 매매가 이뤄진 과정 등이 명명백백히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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