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노 전 대통령 거론에 분노"…민주 '김윤옥 명품구입' 공세
MB측 "우리라고 아는 게 없겠나"…'盧정부 파일' 공개까지 거론
민주·한국당 공방 가세…헌정특위·사개특위·2월국회에 영향 미칠 듯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이한승 이슬기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조여가는 검찰 수사와 이에 대한 이 전 대통령 측의 반발을 계기로 정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검찰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의혹 수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한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전·현 정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전·현 정권 간의 충돌은 당장 검찰 수사는 물론이고 개헌과 권력기관 개편 등 올 상반기 정국을 관통할 굵직한 현안 전반, 더 나아가 '6·13 지방선거' 판도에도 직·간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 전 대통령이 이번 수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 "분노한다"는 표현까지 동원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데 대해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 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전날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하루 만에 이 같은 비판 입장을 내놓음에 따라 앞으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이 전 대통령 소환은 물론 구속 가능성까지도 거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이 적폐청산 수사를 정치공작, 짜맞추기 수사라고 강변하는 것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와 국민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것"이라며 "재임 시절 권력형 비리 사건 수사에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끌어들인 것은 최소한 정치적 금도도 넘은 것으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일단 이날 문 대통령의 '분노' 발언에는 '무대응'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성명서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밝힌 만큼 추가 대응으로 현직 대통령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별도 대책회의를 가진 데 이어 '노무현 정부 파일'까지 거론하며 총반격의 모양새를 취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효재 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의 지지를 사기 위한 여러 가지 행위를 할 것이고,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면서 "이명박 정부도 5년 집권했고, 집권이란 모든 사정기관의 정보를 다 들여다보는 것이다. 왜 우리라고 아는 게 없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분노니 모욕이니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아픈 데를 찔리긴 한 것 같다"며 "분노한다고 정치보복이라는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회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실제로 내용의 진위나 파괴력을 떠나 '노무현 정부 파일'을 폭로할 경우 이번 갈등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면서 정국은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역시 이번 보수 정권을 옥죄는 적폐청산에 대해 '보수궤멸' 시도라고 강하게 반발한 데 이어 문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고 나서 정치권의 논란은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할 때 하는 말"이라며 "지금 정치보복이 극에 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에선 이 전 대통령 주변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양측의 이 같은 전면 대치가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을 제기하고 있다.
이 경우 당장 개헌과 권력기관 개편 등 당면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개헌·사법개혁 특위 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2월 임시국회까지 연말과 비슷한 파행을 되풀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특활비 일부가 2부속실에 전달돼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명품 구입 등에 사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이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전 대통령 측근인)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의 검찰진술 내용을 제보받았다"며 "김 전 실장이 특활비 1억원을 지시에 의해 받았고, 이것을 달러로 환전해 김 여사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장에게 줬고, 그것이 김 여사의 명품 구입 등에 쓰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측은 박 수석부대표 등에 대한 검찰 고발 방침을 밝힘과 동시에 '논두렁 시계' 되갚기라며 반발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라디오에 출연해 "그 돈 중 일부가 김 여사에게 흘러들어 가서 김 여사가 해외 순방 때 함께 가셔서 거기서 해외에서 명품을 구입했다, 이런 식으로 가려고 한다는 게 우리의 대충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 핵심 측근은 "김 여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의 프레임으로 엮으려고 한다"며 "그렇지만 권 여사는 실제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논두렁 시계'와 돈을 받은 것이 밝혀지지 않았나"라고 쏘아붙였다.
kyung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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