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세계탁구선수권·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단일팀 출전
올림픽 단일팀은 1963년부터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산'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에서 남북이 한팀을 이뤄 출전하는 건 1991년 탁구와 축구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참가한 이후 27년 만으로, 올림픽은 물론 종합대회에서는 '사상 최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주재로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남북 올림픽 참가 회의'에선 평창올림픽에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출전을 확정했다.
기존 우리 선수 23명에 북한 선수 12명이 가세해 총 35명으로 엔트리를 확대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평창올림픽에서의 남북 단일팀 구성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니버시아드 등 종합대회에서는 사상 처음이다.
단일 종목에서는 지난 1991년 탁구와 축구에서 나란히 단일팀을 구성했다.
1990년 들어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남북이 네 차례에 걸친 만남 끝에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같은 해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팀'으로 출전했다.
탁구 단일팀은 남한의 현정화, 북한의 리분희 등이 주축을 이룬 여자 단체전에서 '세계 최강' 중국의 9연패를 저지하고 우승하는 기적을 창출했다.
또 그해 6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도 남북 단일팀은 8강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는 여러 차례 남북 단일팀 시도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북 단일팀 시도는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1년 앞둔 1963년부터 꾸준하게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 로잔과 홍콩 등지를 오가는 세 차례 체육 회담에도 단일팀 구성은 무산됐다.
1984년 LA 올림픽 단일팀 구성 노력은 구소련 등 공산국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또 안방에서 개최됐던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앞두고도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협의를 3년에 걸쳐 네 차례 진행했지만, 북한이 IOC의 수정안을 거부하고 올림픽에도 끝내 불참했다.
남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1년 앞둔 2007년 2월 남북체육 회담을 열어 구기 종목을 중심으로 단일팀을 파견하기로 하고, 단기와 단가, 합동훈련 방안까지 합의했다.
하지만 '실력 위주로 선수를 뽑자'는 남측의 입장과 '5대 5 동수로 선수를 구성하자'는 북측의 주장이 맞선 데다 남북 관계 악화로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단일팀은 물거품이 됐고, 개막식에서의 남북 공동입장도 이때 명맥이 끊겼다.
새 정부 들어 평창올림픽에서의 남북 단일팀 출전이 화두로 떠올랐고, 결국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지난해 6월 24일 전북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개막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과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한 게 신호탄이었다.
문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방한한 바흐 IOC 위원장에게도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남북 단일팀 구성에 협조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청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에 오른 도종환 장관은 취임 후 첫 행보였던 평창 방문 행사 때 여자아이스하키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겠다고 구체화했고, IOC와 협의를 거쳐 여자아이스하키 출전 엔트리 확대를 끌어내면서 결국 뜻을 이뤘다.
chil881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