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지켜온 수녀원, 다시 짓는 700일의 기록

입력 2018-01-22 11:44   수정 2018-01-22 11:59

50년을 지켜온 수녀원, 다시 짓는 700일의 기록
부산 수녀원 개보수 과정 담은 '광안리 하얀 수녀원'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광안리 앞바다에서 멀지 않은 부산 수영구 도심에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본원(분도수녀회)이 있다.
1965년 스위스 건축가 프리츠 도스왈드가 건물을 설계했다. 1968년 이곳에서 서원(수도자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한 이해인 수녀를 비롯해 수많은 수녀가 '기도하고 읽고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 시간 동안 건물 또한 수녀회의 일상을 담아 조금씩 진화했다.
오퍼스건축과 모노솜디자인의 대표 건축가인 우대성, 조성기, 김형종이 분도수녀회 본원 개보수 과정을 기록한 책이 '광안리 하얀 수녀원'(픽셀하우스 펴냄)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낡은 성당을 부수고 새로 짓겠다는 계획은 성당을 비롯한 전체 건축물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고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 원형의 모습들, 하얀색의 아주 담백하게 되어 있는 본원의 모습들은 최대한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게 건축가로서 저의 결론입니다. (중략) 50년간 모든 구성원이 공감한 성당의 공간, 소리, 울림, 빛…. 이걸 딴 거로 대체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수녀원 곳곳을 돌아보고, 수녀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건축설명회를 열고, 수녀원 언덕방에 묵으면서 건축가가 생각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 책에 오롯이 담겼다.
수녀원을 고치는 일은 녹록지 않다. 그저 건축적으로 조형적으로 멋있는 집이 아닌, 수녀회의 정신을 담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곳이 집이기도 한 수녀들이 바라는 것 또한 제각각이다. 저자는 그 지난한 과정을 TV 프로그램에 빗대기도 한다. "나는 '1대 500'을 진행 중이다. 건축가 한 명과 건축주 500명이 진행한다. 그러나 같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500명이 질문을 하고 한 명이 풀어야 한다."
건축가는 '일상에 대한 주목'을 핵심 줄기로 삼아 작업을 진행했다. 30년 전 깊은 슬픔 속에서 수녀원을 찾았던 소설가 박완서의 글 '언덕방은 내 방'도 수녀회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건축가는 '그 모든 게 적절할 뿐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평등했다'는 구절을 곱씹으면서 "나에겐 그것이 '모든 공간이 평등했다'로 읽혔다"고 회고했다.
700일에 걸친 수녀원 공사는 2016년 8월 종료됐다. 저자는 이후 쓴 글에서 "(쓰임에 맞는지는) 시간 속에 채워지고 확인되리라 생각한다"라면서 "부족함을, 쓰는 분들의 지혜로 메워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아파트뿐 아니라 관공서, 극장, 교회 등 옛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뚝딱 짓는 일에 익숙한 오늘의 세태에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260쪽. 2만 원.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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