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정보수집 정황으로 부적절 논란…'대책' 실행 여부는 확인 안 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법원행정처가 법원의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모임이나 판사들의 활동을 두고 광범위한 동향파악에 나서는 한편 사법행정권 남용 소지가 있어 보이는 대응책까지 마련한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보수집 과정에서 부당한 방법이 동원됐는지, 법원행정처가 세운 대응책이 실제로 시행됐는지를 더 조사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가 발표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일선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정보수집 활동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조사위에 따르면 행정처는 인터넷 포털에 개설된 일선 판사들의 '익명게시판' 카페에 행정처 심의관이 접근하게 했다. 로그인이 가능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확보해 회원을 가장해 활동하게 하거나 실제 회원이 되도록 한 것이다.
행정처는 이를 통해 카페 운영자와 회원 현황을 파악했다. 더 나아가 상고법원 설치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 형사사건 선고, 박상옥 대법관 임명 제청, 쌍용차 해고노동자 판결 선고, 법관 인사 등에 관한 주요 게시글과 댓글을 수집했다.
법원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모임에 대한 정보는 모임의 간부를 접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상은 사법제도와 법관인사 등을 논의하는 학술대회를 준비 중이던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이었다.
인사모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당시 연구회 회장이던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활용했다.
행정처는 이 전 상임위원을 통해 모임의 회원 활동 내용과 구체적 발언, 내부 분위기, 참석자들의 반응, 뒤풀이 상황까지 파악해 윗선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SNS 등에 공개된 판사들의 동향과 관련해서는 더욱 심층적인 정보를 주변 지인을 통해 수집해 대응방안을 마련하려 했다고 추가조사위는 밝혔다.
법원이 추진하던 상고법원 제도에 대한 반대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리고, 대법원의 '월권적 사실심 심리 관여'를 지적하는 칼럼을 언론사에 게재한 판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해당 판사의 친한 선후배 명단을 취합하려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실행됐는지는 추가조사위가 확인하지 못했다.
판사모임에 대한 대책으로 검토된 방안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다는 게 추가조사위의 판단이다. 일례로 판사들의 익명 게시판 카페의 자진 폐쇄를 유도하기 위해 회원으로 가장해 활동하면서 활동 중단을 유도하는 글을 지속해서 올리는 방안이 문건에 거론됐다.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판사가 단독판사회의 의장으로 뽑히는 것을 우려하면서 다른 판사를 '대항마'로 내세워 선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문건에 나오기도 했다.
특정한 주장에 동조하는 판사 중 핵심그룹을 '고립'시킨 후 일반 판사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언급도 있었다.
조사위는 이런 방안들이 실행 단계로 넘어갔는지 아닌지는 조사권한을 넘는 범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확인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향후 대법원이 별도의 조사기구를 구성하거나 자체조사를 통해 파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법원 일각에서 나온다.
이날 조사결과를 발표하기 전 추가조사위가 대법원장을 따로 면담한 것도 미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별도의 조사가 이뤄지고 문건 내용에 나온 대응책이 부당하게 실행된 것으로 확인될 경우 관련자에 대한 징계 등 문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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