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예상했던 대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해 개헌에 매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가의 형태와 이상의 모습을 말하는 것은 헌법이다. 50년, 100년 앞의 미래를 응시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22일 국회 중의원에서 한 신년 시정연설에서다.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금의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군사대국'으로 진출하겠다는 게 그 요체다. 특히 그는 150년 전 메이지유신 시대의 인물들을 소개하고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인 메이지유신을 상기시켜 개헌 우호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은 명암이 있다.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태평양 국가 국민이 전쟁의 참화와 식민지 참상을 겪게 했던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의 언급은 예사롭지 않다. 일본의 동태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개헌의 주 타깃은 평화헌법 제9조의 1항(전쟁·무력행사 포기)과 2항(전력보유와 교전권 불인정)이다. 이를 바꿔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2단계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자위대의 근거를 명확히 하는 9조3항을 추가하고 나중에 9조2항에 손을 대는 방안이다. 여당인 자민당은 연내 국회 발의를 마치고 내년 봄 국민투표를 거쳐 2020년 새 헌법 시행을 목표로 잡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등이 개헌 저지에 총력전을 펴고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지만, 자민당과 공명당 등 연립여당이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단독으로 개헌발의선을 넘었기에 큰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위협 등 '북풍 카드'를 활용해 방위력 강화에 전력을 기울일 것임을 누차 강조했다. 여기에는 자위대의 적(북한) 기지 공격이 가능한 공격능력 보유도 포함된다. 그 경우 평화헌법의 전수방위(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반격한다) 조항을 묵살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대외 정책에선 미·일 동맹이 일본 외교·안보의 기축임을 강조하면서 작년 11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공동전략으로 내세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과 일본, 인도, 호주 4개국 중심의 이 전략이 '중국 포위'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 외교와 일본 외교가 쉽게 공조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아베 총리가 중국과의 적극적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도 눈에 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라면서 국교수립 40주년인 올해 양국 관계를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대한 협력과 함께 경제, 문화, 관광, 스포츠 등 다양한 차원의 교류 확대 방안도 담겼다. 자신의 조속한 방중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일 초청 의사도 피력했다. 중국 포위 전략을 구사하는 만큼 한계가 뚜렷할 것이다.
한일관계에선 냉랭해진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는, 지금까지의 양국 간 국제약속, 상호 신뢰의 축적 위에 미래지향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협력관계를 심화시켜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년 1월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표현했으나, 이번엔 아예 삭제했다. 2014년 3월 중의원에서 "한국은 기본적인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했다가, 4년째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중대한 흠결이 드러난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합의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조치에 불만에서인듯하다. 정부는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지만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에서 자발적 사과 등을 일본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였다는 게 일본의 주장이지만, 피해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밀실 합의로서 중대한 흠결이 있다면 원인무효로 보는 게 타당하다. 과거를 가리고 보편적 인권을 외면하는 일본과는 당분간 불편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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