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정당과 연대 가능성 열어놔…크루즈선 침몰사고 영웅 등 총선후보도 발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창당 8년 만에 사상 첫 집권을 노리고 있는 이탈리아 제1야당 오성운동이 오는 3월 4일 실시되는 총선을 앞두고 공약을 발표했다.
22일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루이지 디 마이오(31) 오성운동 대표는 21일 동부 해안도시 페스카라에서 당 대회를 열고 총선 후 집권 청사진을 담은 공약을 공개했다.
20개로 구성된 이번 공약에는 오성운동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히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국민투표가 포함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유로존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방안은 코미디언 출신의 베페 그릴로가 2009년 당을 창립한 시점부터 오성운동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 9월 그릴로의 뒤를 이어 새로운 대표로 선출된 온건 성향의 디 마이오 대표는 취임 이후 온건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는 유로존 탈퇴 국민투표 등 과격한 당의 기존 입장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오성운동이 이번 공약에 유로존 탈퇴 국민투표를 포함하지 않은 것에는 오성운동 집권 시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고, 지지 기반을 넓혀 집권을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기존 좌파와 우파로 나뉜 기성 정치의 부패와 정실주의에 항의하는 세력에서 출발한 오성운동은 28% 안팎의 지지율로 이탈리아 단일 정당 가운데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같은 지지율은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에 비해서는 5%포인트가량 앞선 것이지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와 극우정당 동맹당 등으로 구성된 우파 연합의 합계 지지율 약 35%에는 훨씬 못미치는 것이다.
디 마이오 대표는 이와 관련, 이날 우파 연합이 정부 구성에 필요한 표를 얻지 못할 경우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은 단일 정당 가운데 최다 득표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당의 대표인 자신에게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경우 다른 정당과 연대하는 데 있어 이날 발표한 오성운동의 공약이 기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들이 내건 공약에 뜻을 함께하는 정당과는 이념과 활동 궤적이 달라도 연대할 수 있음을 내비쳐 기성 정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배제해온 오성운동의 기존 입장이 변화했음을 시사했다.
오성운동이 이날 제시한 공약은 오성운동의 대표 정책으로 꼽히는 취약계층을 위한 780유로(약 100만원) 기본소득 도입을 비롯해 400개의 불필요한 법안 폐지, 영업세 대폭 인하, 연급 수급 연령을 상향한 2012년 연급 개혁안 완화, 비생산적인 공공 지출을 줄여 신기술에 500억 유로(약 65조6천억 원) 투자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오성운동은 그러나 공약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오성운동은 이날 방송기자, 소비자 단체 대표 등 상당수 저명인사들이 포함된 총선 후보군도 함께 발표했다.
당의 웹사이트 상에서 이뤄진 당원들의 투표로 선출된 이들 후보 가운데에는 2012년 1월 토스카나 해안에서 발생한 크루즈선 콩코르디아호 좌초 사고 당시 원칙에 충실한 참된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그레고리오 데 팔코(51)도 끼어 있다.
당시 사고 해역 인근 해안경비대장을 맡고 있던 그는 32명의 사망자를 낸 크루즈선 좌초 직후 공개된 녹취록에서 승객들과 배를 버리고 달아난 '겁쟁이'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를 욕설이 섞인 강경한 어조로 준엄하게 꾸짖으며, 배로 돌아가라고 단호히 명령해 이탈리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로, 이번 총선에서 오성운동의 상원 후보로 나서게 됐다.
총 약 1만 명의 신청자가 몰린 오성운동의 총선 후보 투표에서는 온라인 후보 등록과 투표 등의 과정에서 석연치 않게 배제되는 사례가 일부 발생하는 등 상당한 혼선을 빚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의향을 밝히는 등 불평을 쏟아냈으나, 디 마이오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큰 문제가 없었다"고 불만을 일축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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