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김예나 기자 = "원래 사고 이틀 전 어머니를 모시고 3박 4일 제주도를 다녀오려고 했어요. 어머니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아야 해서 여행이 미뤄졌는데 원래대로 갔으면 사고도 안 났을 거에요."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서울장여관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사흘이 지난 23일 희생자들의 장례는 유가족의 눈물 속에 치러졌다.
이날 오후 서울 구로성심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모(55)씨의 빈소에서 만난 고인의 사촌 형(64)은 이같이 말하며 눈물을 삼켰다.
오후 3시께 찾아간 김씨의 빈소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백발이 성성한 고인의 노모는 무표정한 얼굴로 빈소에 앉아 있다가도 참척(慘慽)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오열했다.
유명 비보이(B-boy)로 알려진 김씨의 둘째 아들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 빈소를 지켰다. 해외 행사에 참석했던 그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귀국했다.
어린 시절부터 춤을 춘 아들은 아버지의 '자랑'이었다고 한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아들이 해외에서도 유명하다고 뿌듯해했다고 유족은 전했다.
유족에 따르면 김씨는 서울의 한 주상복합단지 푸드코트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성실한 가장이었다.
김씨는 사고 전날인 19일 종로에서 일을 본 뒤 이튿날일 20일 강원도 춘천으로 내려가기 위해 여관에 짐을 풀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사촌 형은 "동생은 평소에 어딜 가도 모텔보다는 찜질방에서 잠을 자는 편"이라며 "종로 5가를 돌아다니다가 찜질방도 없고 하니 여관에 투숙하게 된 것 같다"고 애통해 했다.
친구들과 19일 오후 9시께 모임을 마치고 서울장여관에 여장을 푼 김씨는 다음날 일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가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20일 새벽 3시께 술에 취한 채 여관을 찾아와 성매매 여성을 요구하던 유모(53)씨가 홧김에 지른 불에 변을 당한 것이다.
김씨의 사촌 형은 사고 수습 과정의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이 어쩌다 업주와 다투게 됐는지, 정확한 사고 경위에 대해 누구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어떻게 수사가 진행되는지,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어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하염없이 부검 결과를 기다리는데 TV에서는 종일 평양에서 '예쁜 여자 왔다'고 그것만 비추더라"라며 "사람이 죽었는데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분들이 있다고 해서 마음 아프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저소득층도 살기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소방 시스템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도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김모(54)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김씨는 화재로 팔과 다리에 2도 화상을 입고 연기까지 들이마신 채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김씨의 빈소에도 비통한 침묵이 흘렀다. 울다 지친 유족들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상주를 맡은 고인의 조카는 "가족들의 상처가 너무 크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취재진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앞서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장여관에서 방화 피의자 유모씨가 지른 불로 6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유씨는 여관 업주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홧김에 근처 주유소에서 산 휘발유를 여관에 뿌리고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현존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21일 유씨를 구속했다.
kihun@yna.co.kr
ye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