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신간 '예정된 전쟁'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부상하는 신흥 세력(아테네)에 위협을 느낀 지배세력(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에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미국 하버드대 벨퍼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낸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부딪히는 상황을 뜻하는 이 표현은 중국의 부상과 이에 두려움을 느끼는 패권국 미국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신간 '예정된 전쟁'(세종서적 펴냄)은 앨리슨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프레임으로 미-중 관계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미-중 관계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앞으로 몇 년간은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이라는 지도자가 있는 상황은 두 나라가 충돌로 이어지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그러나 저자는 두 나라가 수십 년 안에 양국 간 전쟁 가능성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점, 그럼에도 전쟁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면 전쟁은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는 역사다. 저자는 하버드대 벨퍼센터에서 응용역사학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투키디데스의 함정' 사례에 주목한다. 500년간 역사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았더니 16개 사례가 나왔고 그중 12개 사례는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책은 이 중 전쟁으로 이어진 다섯 가지 사례와 전쟁을 피했던 4개 사례를 분석하며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는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19세기 급부상한 일본과 중국·러시아의 전쟁, 17세기 해상을 지배했던 네덜란드에 맞선 영국, 15세기 영국에 도전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례 등 전쟁이 발생한 사례에서는 모두 저자가 '신흥세력 증후군'과 '지배세력 증후군'으로 부르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자의식이 커진 신흥국은 국제적 인정과 존중을 받을 자격에 대한 권리의식을 갖는다. 반면 기존 지배세력은 쇠락을 경험하면서 지나친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긴장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더해지며 전쟁으로 이어졌다.
반면 15세기말 세계제국과 무역을 두고 경쟁했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20세기초 영국에 맞섰던 미국, 1940년대∼1980년대 세계 패권을 놓고 대립했던 미국과 소련,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유럽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두고 경쟁하는 영국·프랑스와 독일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한 사례다.
책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교황이라는 중재자를 통해 대결을 피했던 것처럼 유엔 같은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영국과 미국의 사례처럼 지도자가 현명함을 발휘해 자국의 이익을 지키면서도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교훈을 제시한다.
"두 사회의 지도자 모두가 과거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전쟁을 치르지 않고 양측 모두의 핵심 이익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전략적 단초를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새로운 구호를 외치거나 정상회담이나 각 부서 실무집단 간의 미팅 횟수를 늘리는 데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중략) 1970년대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회담 이후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깊이 있는 상호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도자와 대중 모두 지금까지의 그 누구보다도 태도와 행동 면에서 크게 변해야 한다는 뜻이며 바로 이 점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원제 'Destined For War'. 정혜윤 옮김. 516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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