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 이후 딱 한 번 개최…인사 때마다 '공백' 반복
법원 1심 기능하지만 위원 임기 사실상 보장 안 돼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고 결정기구인 전원회의가 최근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부위원장과 상임위원 인사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으로, 매번 인사 때마다 공정위 심의 시스템에 공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공백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원회의가 법원의 1심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위원의 임기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공정위에 따르면 구술 안건을 다루는 올해 두 번째 전원회의는 애초 이날 열리기로 했지만 연기됐다.
올해 공정위 전원회의는 지난 10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리고서 '개점휴업' 상태다.
범위를 작년까지 넓히면 12월 20일 2017년 마지막 전원회의를 열고서 35일 동안 단 한 차례만 구술 안건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전원회의는 위원들 앞에서 공정위 심사관과 피심인(기업) 측이 공방을 벌이며 진행되는 구술 안건 회의와 서면으로 의견만 취합하는 서면 안건 회의로 나뉜다.
전원회의에 상정되는 구술 안건은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거나 쟁점이 많은 사건이 대부분으로, 통상 매주 수요일 열린다.
재적 위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이 이뤄지며, 법원의 1심과 같은 효력이기 때문에 위원은 사실상 판사의 역할을 한다. 공정위가 '준사법기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전원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큰 폭의 인사를 앞두고 있지만 정확히 언제, 누가 교체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지난 17일 지철호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를 부위원장에 임명했다.
공정위는 이어 22일 장덕진 소비자정책국장과 박재규 경쟁정책국장을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한 주 사이에 공정위 위원 9명 가운데 3분의 1인 3명이 바뀐 큰 폭의 인사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원회의 심의를 통해 합의하면 통상 한 달 뒤에 나오는 의결서에 위원이 서명해야 한다"며 "하지만 인사로 교체되면 위원이 서명할 수 없어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인사를 앞두고서는 전원회의를 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원회의가 심의·의결해야 하는 중요 사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전원회의에 상정된 사건은 현재 20∼30건에 이른다. 매주 새로운 사건이 상정되기 때문에 전원회의가 밀릴수록 사건은 더욱 쌓일 수밖에 없다.
전원회의의 특성상 사건 하나하나가 첨예하게 의견을 다투기에 간단하게 심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년 말 김상조 위원장이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싶다"며 피해자에게 사죄한 가습기 살균제 관련 SK케미칼·애경 사건 심의는 애초 이날 열리기로 했지만, 연기됐다.
재조사를 통해 상정된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올해 말까지이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다.
검찰이 전날 200억원대 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한 조현준(50) 효성그룹 회장 관련 '총수일가 사익편취' 사건도 문제다.
공정위 사무처는 조석래·조현준 부자를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는 판단을 작년 말 내렸지만, 전원회의는 아직도 심의하지 못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 고발을 통해서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검찰이 병합수사를 하려고 고발을 기다렸지만 결국 좌절됐다는 후문이다.
인사를 앞둔 공정위 전원회의의 공백은 이번 만의 일이 아니다.
작년 김상조 위원장 임명을 전후해 공정위의 구술 안건 전원회의는 4월 20일부터 두 달 넘게 열리지 않았다.
인사 때마다 반복되는 '개점 휴업'의 근본 원인은 전원회의가 법원 1심 역할을 하는 준사법기관임에도 위원의 임기 3년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공정거래법 40조는 위원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다면 의사에 반해 면직 또는 해촉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옷을 벗은 신영선 전 부위원장의 잔여 임기는 2년, 김성하 전 상임위원은 7개월이었다. 사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긴 채규하 전 상임위원의 잔여 임기도 2년 1개월이었다.
형식상 사표를 받아 사임했다고는 하지만, 공정위 안팎에서는 옷을 벗은 두 위원이 자의에 따라 그만뒀다고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공정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인사는 사법기관이라면 할 수 없다"며 "이렇게 할 바에야 1심 기능을 전속고발권처럼 반납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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