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교수 '소진시대의 철학'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소득은 높아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는데도 여기저기에서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들린다. 과도한 경쟁을 견디지 못해 우울함, 고독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물질문명은 융성하는데, 정신은 피폐해진다.
학자들은 현대에 발생하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그간 피로 사회, 불안 사회, 위험 사회 등으로 규정했다. 니체 연구자인 김정현 원광대 철학과 교수도 명명에 동참했다. 점점 줄어서 다 없어진다는 뜻의 '소진'(消盡) 사회다.
신간 '소진시대의 철학'은 김 교수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철학적 해법을 담은 책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고자 했던 니체처럼 철학자로서 생각하는 21세기 올바른 생존 방법을 적었다.
저자는 산업화에 이어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면서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비판과 반성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이 과잉 행동에 내몰리고 있다.
그는 소진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병리 현상을 '자아신경증'이라고 부른다. 자아신경증은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분주함과 부산함으로 인해 자아가 약화하고 관계는 사라지는 증상을 의미한다. 재산이나 외모를 자신의 전부라고 여기면서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도 퇴행적인 자아신경증의 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병든 영혼을 치유하려면 '사색적 삶'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자도 소진시대에 요구되는 활동은 사색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불안과 소진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유동적 사이버 공간에서 부유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내면에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며 "오늘날 영혼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은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관리술이며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치유술"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성찰하기, 모든 것을 내려놓기, 익숙한 사고와 행위에서 벗어나기, 집단을 형성하고 사람 만나기 같은 지침을 이행하라고 충고한다.
사색의 필요성을 역설한 저자는 더 나아가 생태계 복원을 주문한다. 산업혁명 이후 자연을 파괴한 인류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생태학적 생명 문화 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미래에도 건강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미래적 생존"이라며 인간의 몸과 대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돼 있어서 대지가 생태학적으로 건강해지면 인간의 몸도 좋아진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바깥세상이 아닌 내면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일상에 지친, 행복을 열망하는 현대인이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다. 중간중간에 저자가 제작한 판화 8점이 실렸다.
책세상. 272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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