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듯한데"…'악' 소리나는 드라마 속 썩은 절대권력

입력 2018-01-25 09:00   수정 2018-01-25 09:25

"어디서 본듯한데"…'악' 소리나는 드라마 속 썩은 절대권력
'의문의 일승' '언터처블'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 등서 다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전직 대통령의 1천억 비자금, 범죄자에 대한 폭력적 정화교육, 국정원의 각종 조작과 특수활동비, 진실 은폐하는 검찰과 경찰, 비리가 드러나도 태극기를 흔드는 지지자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처음 듣는 일은 아니다. 각색과 첨삭이 이뤄졌으나 뉴스에서 접한 일들이 발빠르게 극화돼 안방극장을 찾았다. SBS TV '의문의 일승', JTBC '언터처블', OCN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
시의성을 잡으려는 욕심이 앞서서인지 저마다 정교함과 스토리의 완성도는 떨어진다. 극성을 강화하느라 온갖 폭력적 에피소드가 난무했다. 그래도 사회상을 고발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의도는 장애물 없이 통과됐다. 해석은 시청자의 몫이다.



◇ "나는 신이다"는 무소불위 절대권력
지난 20일 JTBC '언터처블' 마지막회의 후반부. 절대권력 장범호(박근형 분)는 경찰들이 잡으러 온다는 소리에 "난 장범호가 아니다. 오레와 카미다"라고 소리쳤다. "오레와 카미다"는 일본어로 "나는 신이다"는 뜻이다. 장범호는 일제 군복을 입고 거만하게 앉아있었다. 그는 평생의 오른팔이었던 수하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일제의 정신으로 무장했다는 사실을 숨긴 채 평생 헌신적인 정치인이자 기업가로 이미지를 만들어왔던 장범호는 사실은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며 사람들 위에 군림했다. 대의를 위해서는 살인과 폭력도 문제없다는 논리로 무장한 그는 온갖 부정부패한 방법을 동원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위에 강력한 왕국을 세웠다.
그가 삼청교육대와 같은 훈련소도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마저 드러났다. 고립된 섬에 범죄자들을 가둬놓고 폭력적으로 훈련을 시키면서 장범호를 따르도록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SBS TV 월화극 '의문의 일승'에는 전직 대통령 이광호(전국환)가 악의 축이다. 현재는 미래경제연구소 소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는 국정원과 그 외곽조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며 퇴임한 이후에도 막후 최강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이광호의 지휘 아래 차기 대통령이 '만들어'졌고, 국정원은 그 과정에서 온갖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 드라마는 살인과 시체유기도 저지르고, 외교행낭을 이용해 세탁한 비자금을 해외에서 국내로 들여오는가 하면, 인터넷 댓글만 다느라 첩보업무는 전혀 모르는, '허를 찌르는' 국정원 직원들의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내부고발자를 죽인 후 '번개탄 자살'로 위장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지난 22~23일 방송에서는 이광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여러 건의 살인을 저질렀고, 사생아로 얻은 아들마저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죽이려고 혈안이 된 모습까지 그려졌다.
'언터처블'이나 '의문의 일승'의 악의 축은 모두 자신이 '선민'이라는 착각에 빠진 절대권력이다. 그의 옆에는 충성을 맹세한, 역시 저마다의 권력을 쥔 수많은 '종복'들이 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혹은 시민)이 그들의 농단과 농간 아래 오랜 세월 살아왔다.

◇ '가상의 도시' 무대로 극성 강화
현실 고발의 기치는 높이 들었지만 극성 강화를 위해 이들 드라마는 실명보다는 가상의 도시나 지명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 두 세명의 얼굴이 겹치는 '언터처블'의 장범호는 가상의 도시 북천시의 군왕이다. '언터처블'은 3대에 걸쳐 북천시를 지배하는 장씨 일가를 둘러싼 권력 암투와 비밀을 파헤친 이야기다. 장범호가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게 아니라, 북천시라는 가상의 도시의 시장이자 유지이자, 기업가라고 설정해 이야기의 운신의 폭을 넓혔다.
장범호가 세운 북천고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인맥, '그들만의 리그'로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는 특권층, 그 아래에서 꼼짝없이 재갈이 물린 언론과 수사기관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는 서원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무대로 한다. 서원시의 각종 이권을 장악해 부를 키운 현승그룹 조영국 회장의 비리를 파헤치고 조 회장과 사이좋게 공조해왔던 서원시장, 비리 검사와 경찰들을 '특공대'가 차례로 잡아들이는 이야기다.
'특공대'는 아웃사이더 정의파 검사 우제문과 형사 몇명, 그리고 전과자들로 구성된다. 치고받고 때려 부수는 액션 누아르를 강조하느라 현실 고발의 섬세함은 떨어지는 대신 악당들의 극악무도함이 강조됐지만 '끝 모를 비리의 사슬'이라는 큰 줄기는 놓치지 않고 있다.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종영까지 4회가 남은 현재 아직 절대악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 매회 특공대가 자신들의 뼈와 살을 태워가며 악당들을 소탕해나가고 있지만 고구마 줄기 엮이듯 계속해서 나쁜 놈들이 나오고 있다.
처음에 밝혀진 악의 배후 세력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빨갱이' 소탕에 집중했던 서원지검 검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초반에 구속수감됐고, 지금은 누가 진짜 악의 배후인지가 묘연한 상태다. 드라마는 시장은 무능력하고 금권과 결탁한 비리 검사와 경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서원시 전체가 악의 세력에 점령당했다고 설정한다. 112에 범죄 신고를 해도 그러한 돈의 논리 아래 피해자가 공권력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는 도시가 서원시다.



◇ 진실이 드러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 세상
이들 드라마는 썩은 절대권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쩌면 진실이 드러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언터처블'에서는 장범호 일가의 엄청난 만행이 낱낱이 밝혀졌지만, 그의 '영도력' 아래 있었던 북천시민들이 장범호를 끝까지 지지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또 장범호가 죽은 뒤 열린 재판에서 그의 수하는 끝까지 장범호를 감싸며 모든 죄는 자신이 충성심으로 저질렀다고 말한다.
'의문의 일승'에서는 전직 대통령 이광호가 검찰에 소환되자 군복차림에 태극기를 흔드는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또 언론은 이광호가 국면전환을 위해 흘린 뉴스를 대서특필한다.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는 적폐세력과는 다른 길을 걸을 줄 알았던 새로운 검사장도 결국은 권력을 잡자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아래 '행동대장'들이 부패하는 권력의 속성을 귀신같이 파악하며 생존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음을 꼬집는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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