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롭스크 창당지·간부회관 자리엔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어
김알렉산드라 근무한 인민위원회 건물 표지판이 유일한 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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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러시아>=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18년 5월 11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출범한 한인사회당은 러시아혁명을 진압하려는 백군이 하바롭스크로 쳐들어오자 혁명 세력인 적군의 일원으로 맞서 싸웠다. 백군에는 한인사회당의 독립투사들이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일본군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전황은 적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한인사회당 창당의 산파역인 33살의 김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스탄케비치는 동료 당원들과 하바롭스크를 탈출하려다가 9월 10일 붙잡혀 아무르강변의 우초스 절벽으로 끌려갔다.
함께 붙잡힌 유동열·김립·이인섭 등 한인사회당 간부들은 중국인 행세를 하며 풀려났으나 한인 최초의 볼셰비키 당원인 김알렉산드라는 심한 고문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창당의 기치를 올린 지 불과 넉 달 만의 일이었다.
백군 간부가 "조선인이 무슨 이유로 러시아 내전에 참여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조선 인민이 러시아 인민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해야만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당당히 말했다.
체포된 지 6일 만에 카를 마르크스 거리 옆 죽음의 계곡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눈에 감긴 붕대를 풀자 김알렉산드라는 마지막으로 열세 걸음을 걷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조선 13도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선 각지의 젊은이들이 떨쳐 일어나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쟁취해 달라고 당부하며 최후를 맞았다.
한글학자이자 한인사회당 기관지 '자유종' 주필을 지낸 계봉우는 그녀를 두고 "혁명사상으론 대한여자의 향도관, 사회주의로는 대한여자의 선봉장, 자유정신으론 대한여자의 고문관, 해방경쟁으론 대한여자의 사표자"라고 칭송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에 와서야 김알렉산드라에게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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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렉산드리아가 순국한 지 100년이 지난 21일, 그녀를 비롯한 한인사회당 간부들이 백군에게 붙잡혀 끌려온 우초스 절벽은 꽁꽁 얼어붙은 채 눈에 덮인 아무르강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러시아 음악가들이 백군을 찬양하는 노래를 연주하라는 강요를 거부했다가 그 자리에서 처형돼 강물로 던져졌다고 알려져 러시아판 절두산(切頭山·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천주교 순교성지)이라고 할 만하다.
전망대가 조성된 절벽 위에는 1858년 청나라를 압박해 아이훈 조약을 체결, 아무르강(헤이룽장·黑龍江) 이북을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킨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총독의 동상이 서 있다. 그의 동상과 여기서 내려다보는 아무르강 풍경은 루블화 최고액권인 5천 루블 지폐에 새겨질 만큼 러시아에서도 명소로 꼽힌다. 아래쪽 산책로에는 17세기 이곳을 처음 탐험해 하바롭스크 지명의 유래가 된 하바로프와 동료들의 이름을 새긴 동판이 붙어 있다.
그러나 이곳 일대 어디를 둘러봐도 김알렉산드라를 비롯한 한인사회당 간부들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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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한국인 답사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이 세운 표지판이다. 검은 석판에 황금색 글씨로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정일 동지께서 2001년 8월 17일 하바롭스크시를 방문하시였다"라고 러시아어와 한글로 적어놓았다.
북한은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密營)에서 태어났다고 내세우고 있으나 탄생지가 하바롭스크라는 설도 있어 당시 그의 하바롭스크 방문과 관련해 흥미로운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러시아 독립운동사 연구자 가운데 상당수는 김정일이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에서 태어나 하바롭스크에서 유아기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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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렉산드라 처형지로 추정되는 죽음의 계곡에는 오벨리스크(고대 이집트의 사각첨탑) 형태의 비석과 사회주의 혁명전사의 조각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소비에트 건설을 위해 숨진 사람들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도 하바롭스크 소비에트(인민위원회) 외무위원이었던 김알렉산드라를 떠올릴 만한 표지는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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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김알렉산드라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무라비예프 아무르스카야 22번지의 3층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곳에는 러시아혁명 직후 인민위원회가 들어서 외무위원인 김알렉산드라 집무실이 있었다. 이 건물은 원동공화국(극동공화국) 중앙은행 청사로 바뀌었다가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의류 매장이 1층을 차지하고 있다.
예전엔 건물 외벽에 김알렉산드라 얼굴 부조상이 붙어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돼 행방을 알 수 없고, "하바롭스크시 소비에트 인민위원인 김알렉산드라가 이 건물에서 일했고 1918년 영웅적으로 죽었다"는 내용의 러시아어 안내판만 붙어 있다. 다행히 이 건물은 러시아 당국이 보호건물로 지정해 놓았다고 했다. 얼굴 부조상을 찾아 다시 붙이고 표지판 한글 병기도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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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당 창당대회가 열린 칼리니나 거리 15번지에는 고층빌딩을 세우기 위해 가림벽을 쳐놓고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전까지 제빵공장이 자리 잡고 길가에 잡화점이 있었다가 계룡건설이 리치빌이란 이름의 두 동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하바롭스크 한국교육원의 권기열 원장은 "시공사가 한국 기업이어서 이곳이 한인사회당 창당대회 개최지라는 사실을 알리는 표석이나 상징물을 세워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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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 한국교육원 바로 옆의 포포프스카야 18번지는 한인사회당 간부회관이 있던 곳이다. 이동휘 위원장, 부위원장 겸 러시아어 서기 오와실리(김알렉산드라 남편), 청년부의장 오성묵, 한국어 서기 겸 기관지 '자유종' 주필 김립, 군사부장 겸 군사학교장 유동열, 재무부장 겸 선전부장 이인섭 등 창당대회 당시 한인사회당 간부들이 사무실로 썼으나 나중에 철도국 건물이 들어섰다가 철거됐다. 지금은 가림벽에 둘러싸인 채 몇 년째 공터로 방치돼 있다.
인근 볼로차예프카 마을은 적군이 백군으로부터 하바롭스크를 탈환하기 위해 1922년 2월 큰 전투를 벌인 장소다. 4년 전 백군에 의해 점령당할 때도 큰 희생을 치른 한인들은 이 전투에도 고려혁명의용군 이름으로 참전해 12명의 전사자와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 이 전투의 공로로 고려인 6연대는 적기훈장을 받았고 한인부대는 '볼로차예프카 연대'로 명명됐다.
이곳에는 당시 전투를 기념하는 대형 조형물이 세워졌고 비문에는 "극동 소비에트 해방을 위해 전사한 118명의 빨치산, 이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한인부대의 활약상과 희생자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아 아쉬움을 줬다.
한인사회당은 하바롭스크에서 3년 만에 간판을 내렸지만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으로서 러시아 혁명사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당당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학계의 평가가 있다.
하바롭스크의 백규성 극동시베리아고려인단체협회장과 지해성 하바롭스크 한인회 총무도 "비록 늦었지만 한인사회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가 뜻을 모으고 러시아 당국과의 협의해 역사적 현장을 기념하는 사업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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