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난방비 한 푼 아끼려고'…매서운 한파 대피소된 동네 경로당

입력 2018-01-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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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난방비 한 푼 아끼려고'…매서운 한파 대피소된 동네 경로당
사람 온기로 매서운 한파 견디는 노인들로 '북적거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광주 북구 운암 1동 주민 김춘임(80) 할머니는 오랜만에 찬거리를 사기 위해 동네 시장을 찾았다.

영하 10도 내외의 한파로 사흘째 골목길은 몇 분만 나다녀도 머리가 멍해질 만큼 냉동고 같았다.
고층 아파트 사이로 부는 칼바람은 김 할머니의 발길을 운암1동 벽산블루밍 아파트 내 경로당으로 되돌리게 했다.
종종걸음으로 경로당에 들어선 김 할머니는 경로당 안방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들이밀었다.
덮은 이불 사이로 퍼지는 따뜻한 온기로 얼어붙은 마음마저 녹아내렸다.
2008년 이래로 영하 10도 한파가 사흘째 이어지기는 14년 만에 처음인 지난 26일 이곳 경로당은 노인들의 '한파 쉼터'가 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선순남 할머니는 두 해만 더 나면 백수(100세)를 맞는다.
나이 들어 귀도 들리지 않고 거동도 불편하지만 겨울철이면 매일 출근도장 찍듯 이곳 경로당을 찾아 다른 할머니들 수다 떠는 모습을 입 모양만 보고 웃는다.
다리가 불편해 항상 의자에 앉아 지낸다고 '의자 할머니'라는 별명의 윤정님(93) 할머니는 따뜻한 경로당에서도 바깥 추위에 몸이 떨리는 듯 목도리와 모자를 벗지 않고 경로당에서 하루를 보냈다.
아파트 단지 주변 단독 주택에서 홀로 사는 홍남례(85) 할머니는 난방비 한 푼이라도 아껴보고자 경로당을 찾았다.
난방비 때문에 집에 있으면 보일러 아껴 틀게 돼 춥다는 홍 할머니는 "집에 있으면 이렇게 따뜻하게 못살아"라고 손을 내저었다.
김춘임 할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낮 동안 모두 밖으로 나가 바람에 홀로 지내는 아파트 난방이 부담돼 매일 경로당에 나온다.
"혼자 있으면 우울증 걸린다"고 말하는 김 할머니는 "이곳에 오면 따뜻하고, 심심하지 않아 좋아 밤만 되면 날이 밝아 경로당에 나오길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한파 대피소가 되는 이곳 몇 푼 난방비보다는 사람의 온기로 겨울을 나는 노인들의 발길로 북적거린다.
총 72명의 경로당 등록 노인 중 매일 30∼40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곳에서 낮 동안 겨울을 난다.
그들은 집에서 싸온 음식을 나누고, 각자의 재능을 살려 하모니카 불고, 노래를 부르며 길고 긴 겨울을 사람 사이의 온기로 버티고 있다.
북구청에서 겨울철 다섯 달 동안 매달 30만원 내외의 난방비를 지원하고, 동주민센터는 이따금 점심과 온수 매트 등 온열 제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곳 경로당의 김택곤(80) 회장은 "경로당을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만 문 열지만 따뜻한 경로당에서 노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있으려고 해 겨울철에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다"며 "그나마 지자체 도움과 노인의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으려는 마음으로 기나긴 겨울을 별 탈 없이 지낸다"고 말했다.

그리도 한파에 움츠리기보다는 겨울을 이겨내며 일하고 싶은 노인도 많다.
홍남례 할머니는 "용돈 벌이라도 해보고 싶어 이런저런 소일거리라도 찾고 있지만, 겨울철이라 일거리가 뚝 끊겼다"며 "매일 같이 추위를 견디며 이곳저곳을 찾아가 나이 많은 노인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부탁한다"고 하소연했다.
광주 지자체는 이번 한파로 독거노인들에게 닥칠 혹시모를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생활복지사들이 매일 거처를 방문하고, 확인 전화를 하고 있다.
pch8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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