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콘텐츠의 다양화…'동성애 코드'까지 품었다

입력 2018-01-27 08:00   수정 2018-01-27 08:55

K팝 콘텐츠의 다양화…'동성애 코드'까지 품었다
'커밍아웃' 홀랜드·이달의소녀 뮤비 화제
"자연스러운 사회변화" vs "동성애 미화 안돼"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세계 음악 시장을 호령하는 K팝이지만 '동성애 코드'는 여전히 껄끄러운 소재였다.
지난해 앤씨아의 '읽어주세요' 뮤직비디오는 동성애 논란에 휘말려 소속사 제이제이홀릭미디어가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2012년 케이윌의 3집 타이틀곡 '이러지마 제발'도 서인국이 안재현을 사랑했다는 내용의 '반전' 뮤직비디오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런 K팝 시장에 잔잔한 균열을 내는 곡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 '게이 커밍아웃' 홀랜드 = 남성 뮤지션 홀랜드(22)는 최근 R&B 장르의 데뷔 싱글 '네버랜드'(Neverland)를 공개했다. 그는 "가요계 최초로 커밍아웃하며 데뷔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는 젊고 또 사랑하니까/ 특별히 갈 곳이 없어도 괜찮아'라는 가사는 차별을 피해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겠다는 자전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뮤직비디오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이다. 홀랜드와 남성 배우는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이나 바다 여행, 입맞춤 등 일상적인 연애상을 보여준다.
미국 빌보드는 22일(현지시간) "홀랜드가 성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 데뷔하면서 한국 음악계가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빌보드는 "동성애는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홍석천과 하리수 등 소수의 유명인만 공개적으로 성 정체성을 밝혔을 뿐"이라며 "홀랜드는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닌 신인임에도 한국 LGBTQ(성소수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이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공개 엿새째인 26일 조회수 374만 건을 넘겼다.
홀랜드 측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홀랜드가 겪어온 사연과 앞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음원으로 냈다"며 "경제적으로 힘들게 제작했는데 여건이 된다면 계속 음악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 이달의 소녀 '츄'의 '하트 어택'(Heart Attack) =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가 2016년 10월부터 매달 한 명씩 멤버를 공개 중인 '이달의소녀'(LOONA) 프로젝트.
지난달 2017년의 마지막 소녀로 공개된 멤버 '츄'(19)는 솔로 싱글 '하트 어택'으로 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빌보드는 5일(현지시간) '츄의 '하트 어택' 뮤직비디오가 동성 간 끌림을 묘사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노래를 자세히 보도했다.
뮤직비디오는 츄의 시선이 끊임없이 먼저 데뷔한 이달의소녀 멤버 이브(21·본명 하수영)를 좇는 과정을 사랑스럽게 그린다. 이브가 책 읽는 모습, 웃는 모습에 츄는 '심쿵'해한다. 무릎 꿇고 사랑을 고백하는가 하면 눈 내리는 창밖에서 하염없이 이브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는 선배 아이돌을 동경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좋아하는 감정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해외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트위터 아이디 'namchuun'은 "K팝 업계는 성 소수자에 대해 완전히 닿아놓은 줄 알았는데, 여성 간 사랑을 다룬 독특한 작품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또다른 트위터 사용자 'radiantbam'은 "성 소수자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런 콘셉트를 보여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썼다.



◇ "자연스러운 문화현상" vs "동성애 미화 위험"…"기획사 노이즈 마케팅" = 각계의 반응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일각에선 성 소수자를 다룬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세계 지성계, 문화계에서는 성 소수자 문제가 꾸준히 화두였다"며 "그런 담론이 이제 한국 문화계에서도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획일적인 틀에서 벗어나 변화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논란거리로 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김규호 동성애문제대책위 사무총장은 "동성애는 서구의 타락한 성문화고,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며 "대중문화가 동성애를 마냥 미화하는 건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김 사무총장은 "영화, 드라마, 노래에서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다 보면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따라 할 수 있다"며 "그 폐해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에선 K팝이 금기시하던 동성애 코드를 받아들인 것이 찬반을 떠나 단순히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있다.
팬픽(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인터넷 소설)에서 동성 멤버 간 에로틱한 설정이 종종 목격되는데, 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팬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제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옛날에는 K팝이 성 소수자를 다루면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분위기니 꿈도 못 꿨지만, 지금은 상업적으로도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 감지된다"고 평가했다.
하 평론가는 "물론 공격받고 잃는 게 있지만 얻는 게 크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관련 시도가 꽤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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