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시간 편법 일상화'…"차라리 휴게시간에 쉬게 해줘야"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경기 시흥의 한 아파트는 올해 경비원 월 급여를 189만 원으로 책정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도 휴게시간을 늘려 지난해에서 소폭 오른 188만 원선으로 경비원 월 급여를 정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대단지 아파트인 송파구 서울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도 노사 간 진통 끝에 휴게시간을 늘려 월 급여를 190만 원 미만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이들 아파트가 경비원 월급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춘 것은 최저임금 인상 이후 근로자 월 급여가 190만 원 미만이면 정부의 일자리 안정지원금 13만 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당수 아파트가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늘려 인위적으로 월급을 190만 원 미만으로 맞췄다는 점이다.
한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열 단지 중 여섯 단지는 비슷한 방식으로 월급을 맞췄을 것"이라며 "정부가 이렇게 하라고 떠민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 아파트가 실질적으로 경비원이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있는 데다, 경비원들은 휴게시간에도 주민의 민원을 무시하기는 어려워 사실상 쉴 수 없다.
김정균 한국노총 서울본부 조직부장은 "휴게시간 늘려서 임금인상 최소화하는 것도 이해하는데 그러려면 휴게시간에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정부가 제도화하고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아파트는 지난해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수준의 급여를 주고 지원금만 챙기는 이른바 '도덕적 해이'도 생기고 있다.
경비원 월급을 몇만 원만 올려 190만 원 미만으로 맞추고는 경비원 1인당 13만 원을 챙겨 실질적으로 입주민 부담금을 낮추는 식이다.
결국, 경비원은 지난해와 일은 똑같이 하고 최저임금이 올랐는데도 월급을 비슷한 수준으로 받는데, 주민들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부담이 줄어드는 현상도 생긴다.
박문순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은 "지난해 187만 원을 주다가 올해 189만 원을 주는 아파트는 경비 근로자 임금은 고작 2만 원 오르는 데 일자리 안정자금 13만 원을 받으면 주민 부담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11만 원이 감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령 경비노동자들이 200만 원 이상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그건 노동시간이 길어서 받는 것이지 고임금 노동자라서 받는 게 아닌데 장시간 근무자에 대한 제도적 배려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경비원은 "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경비원 급여를 왜 세금으로 메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비원들이 이런 사정을 감내하는 것은 노조 조직률이 낮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에는 한국노총 산하에 전국아파트노동조합연맹(아파트노련)이 있을 정도로 경비원 등 아파트 관리 근로자의 노조 조직률이 높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와해됐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한국노총에서 연맹을 구성하려면 조합원이 1만 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용역화에 밀려 조합원 수가 줄면서 아파트노련이 해체됐다"며 "서울본부만 해도 경비 조합원 수가 최근 4∼5년 사이 800명에서 200명으로 급감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자리안정지원금 때문에 경비원 휴게시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며 "휴게시간에 경비원이 실제로 쉴 수 있도록 근로감독을 철저히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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