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49분 대접전' 보즈니아키, 이기고도 '미안해'

입력 2018-01-28 09:46  

'2시간 49분 대접전' 보즈니아키, 이기고도 '미안해'
30도 넘는 무더위 속에 서로 한 차례씩 메디컬 타임아웃
결국 보즈니아키가 이겨 첫 메이저 우승에 세계 1위까지 '독식'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피만 안 났을 뿐 '혈투'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은 경기였다.
27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여자단식 결승전.
세계 랭킹 1위 시모나 할레프(루마니아)와 2위 캐럴라인 보즈니아키(덴마크)가 코트에서 마주 섰다.
둘은 모두 세계 1위까지 올랐던 선수들이지만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 선수들이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이번이 세 번째 메이저 대회 결승 진출이다.
1세트가 시작된 이후 보즈니아키가 게임스코어 3-0으로 달아날 때만 하더라도 예상 밖의 싱거운 승부가 펼쳐지는 듯했다.
하지만 '불굴의 할레프'의 저력이 보즈니아키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할레프는 이번 대회에서 두 차례나 상대에게 매치포인트를 허용하고도 결승까지 진출한 진기록을 남겼다.
3회전 로렌 데이비스(76위·미국)를 상대로 3세트에 매치포인트를 세 번이나 내줬고, 안젤리크 케르버(16위·독일)와 준결승에서도 두 번이나 매치포인트에 잡혔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메이저 대회에서 두 차례 경기에서 매치포인트를 잡히고도 결승까지 올라간 선수는 이번 대회 할레프가 처음이었다.




1세트는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보즈니아키가 기선을 제압했고, 2세트는 게임스코어 3-2로 앞서던 할레프가 메디컬 타임아웃을 불렀다.
이날 경기는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습도 역시 60%가 넘는 상황에서 진행됐다.
할레프는 벤치에 앉아 혈압까지 측정하며 힘든 모습을 보였다.
이번 대회 내내 발목에 테이핑하고 출전한 할레프의 한계가 여기까지인 듯했다.
그러나 코트로 돌아온 할레프는 마치 '내가 언제 혈압을 재고 있었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반격에 나서 게임스코어 4-3에서 상대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 결국 6-3으로 2세트를 따냈다.
2세트가 끝나고는 10분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대회 규정상 지나치게 더운 날씨에는 세트 사이에 10분 휴식을 주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3세트는 이미 체력이 소진된 두 선수가 서로 계속 상대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접전을 이어갔다.




이번엔 보즈니아키가 메디컬 타임아웃을 불렀다. 게임스코어 3-1로 앞서다가 내리 3게임을 뺏겨 뒤집힌 시점이었다.
왼쪽 무릎에 테이핑을 감고 나온 보즈니아키 역시 이번에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마지막 저력을 발휘, 내리 3게임을 따내며 2시간 50분 가까운 접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에 세계 랭킹 1위 자리까지 할레프로부터 빼앗는 순간이었다.
보즈니아키는 우승 소감을 말하기 전에 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말하기 전에) 잠시 트로피를 느껴보고 싶어요."
그는 "이 순간을 몇 년 전부터 기다려 왔는데 드디어 오늘 꿈이 이뤄졌다"며 "이제 '메이저 우승 없는 1위'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됐다"고 기뻐했다.




닐 다이아몬드의 '스위트 캐럴라인'이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보즈니아키는 할레프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는 "지금 매우 힘든 순간인 것을 알고 있다"며 "오늘은 내가 꼭 이겨야 했지만 앞으로 우리는 또 여러 차례 맞대결을 벌이게 될 것이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할레프는 "경기가 끝나고 울었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다"고 감정을 억누르며 "이번에도 (메이저 우승) 가까이 갔는데 마지막에 체력이 다 떨어졌다"고 아쉬워했다.
email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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