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정책 관료주의 축소… 실행 가능 시스템인지는 아직"
(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정부로부터 조건 없이 돈을 받으면 놀까, 아니면 일하려고 애쓸까."
35세의 핀란드 컨설턴트 시니 마티넨은 지난해 1월 로또에 당첨됐다고 기뻐했다.
그가 말한 로또는 돈을 주고 사는 복권이 아니었다.
로또는 실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던 그에게 주어진 이른바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었다.
세후 월 500유로(66만 원 상당) 실업 수당 대신 월 560유로(74만 원 상당)를 받기 시작했다.
의무적인 구직활동 등 아무런 조건 없이 이를 수령하고 있다.
마티넨 같은 핀란드인들은 모두 2천 명이다.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복지 관련 수당을 받는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무작위 선발 과정을 거쳐 지난해 1월 1일부터 보편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만 1년을 넘기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마티넨은 "보편적 기본소득은 정말로 완벽한 제도"라며 "기초생활에 필요한 소득이 있기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핀란드 정부의 이런 실험은 그 효과가 어떤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상태로 2년 차를 맞았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8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실험이 진행되면 구직활동 등 의무적인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기본소득 수혜자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었으나 실제로 그런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 실험이 근로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표본이 될지를 놓고 의구심이 일고 있다.
제도 도입에 막중한 역할을 한 총리실 고위 전문가 마커스 캐너바는 "갈 길이 멀지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과 신자유주의의 대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지지를 얻은, 역사가 오래된 제도다.
최근 들어서는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등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핀란드 우익 정부는 무작위 실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정책을 입안한다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설정해 두고 이 실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를 너무 서둘러 도입한 감이 없지 않다.
정부는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 전 그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핀란드 노조중앙기구 SAK 책임 이코노미스트 이카 카우코란타는 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복지 관련 수당 제공 시 구직활동 등의 의무를 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결국 복지시스템을 망가뜨리게 되며 결국 복지 제도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카우코란타는 "조건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높은 취업률에 곁들여 복지혜택을 확대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이런 제도가 본격 도입되면 재정적자가 5% 포인트는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제도 수혜자인 47세의 제빵사 출신 미카 루수넨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서부 한 시골에서 6명의 자녀를 둔 39세의 한 가장은 기본소득이 비디오 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서 "지난 6년간 신경쇠약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더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핀란드 정부는 보편적 기본소득 적용 대상을 저소득 근로자나 자영업자, 전업주부, 학생 등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고 총리실 캐너바가 말했다.
어떤 가정에 대해서는 육아수당을 삭감하거나 더 지급하는 등의 다른 실험들도 진행될 수 있다는 것.
많은 이들은 이 제도를 놓고 정부의 열정이 식었다고 믿고 있다.
어떤 형태의 실업자들을 제도 수혜자로 할지, 얼마를 줘야 할지 등에 대해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 수혜자들은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기에는 결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제빵사 출신 루수넨은 "이 제도 실험을 계기로 사람들이 무엇이 공평하고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고 복지시스템이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게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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