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한달…"꼼수에도 눈 질끈"vs"살아보려는 자구책"

입력 2018-01-30 06:05   수정 2018-01-30 10:30

최저임금 인상 한달…"꼼수에도 눈 질끈"vs"살아보려는 자구책"
무급 휴게시간 확대·주휴수당 회피 등 인건비 줄이기 '백태'
근로자들 "인상효과 크지 않게 느껴져"…업주들 "알바가 나보다 더 받아"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시간당 최저임금이 작년 6천470원에서 올해 7천530원으로 1천60원(16.4%) 인상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이라는 자영업자들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아르바이트 근무를 쪼개거나 근무시간 중 무급 휴게시간을 확대하는 등 인건비 아끼기에 고심이다. 아르바이트생 근무시간을 줄여 자신이 더 일하는 업주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삶의 질이 제법 나아지리라 기대했던 근로자들에게는 고용주들의 이런 반응이 '꼼수'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수는 '있는 일자리라도 지켜야지'라는 생각에 차마 따지지 못하고 처지만 한탄한다.

◇ 휴게시간 확대 등 인건비 줄이기…근로자들 "인상효과 크지 않아"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는 최근 공지사항이 붙었다. 경비원들을 계속 고용하는 대신 야간에 경비초소 근무자를 줄이고, 주·야간 무급 휴게시간을 늘려 관리비 부담을 감소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입주민들의 급격한 관리비 상승 부담을 줄이고 직원들과 상생 차원에서 휴게시간을 늘렸다'는 설명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급여가 꽤 늘 것으로 기대했던 경비원들은 못내 실망한 눈치다.
올해로 18년째 경비직으로 근무한다는 A(67)씨는 "입주자 대표회의 결정이라지만 우리에게 의견을 묻거나 협의한 적은 없다"면서 "뭔지도 잘 모르고 서명하라고 해서 하긴 했지만 종전대로 일했으면 돈이 정말 늘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프랜차이즈 제과업체 매장에서 일하는 대학생 B(21)씨는 주말 이틀간 하루 5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한다.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된 이달부터는 30분 휴게시간이 생겨 실제 급여는 4시간30분 만큼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B씨는 "계산해 보니 작년보다 하루 2천원 더 받는 셈"이라며 "휴게시간에는 카운터 안쪽 의자에 앉아 있고 사장님이 일하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실제로는 별로 크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눈치'가 빠른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저임금 위반행위를 고용노동부에 적극 신고해 법적 권리를 찾기도 한다.
관악구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C(23)씨는 특별한 변동사항 없이 법정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C씨는 "요즘에는 노동부에 신고하면 다들 바로 계좌에 입금해 준다. 아르바이트를 줄이는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는 최저임금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커뮤니티도 개설됐다. 최저임금 미지급 등 법 위반행위 사례, 관할 고용노동청에 신고해 법정 임금을 받은 경험담 등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일부 지역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는 "지역 점주들이 단합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더라", "고용노동청에 신고한 아르바이트생 신상을 점주들이 공유한다더라" 등 흉흉한 소문도 도는 상황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최저임금이 인상된 뒤 이달 22일까지 3주에 걸쳐 노동자들로부터 이메일,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접수한 최저임금 관련 제보가 200여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제보자가 확인된 이메일 제보 77건을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 후 상여금 축소 사례가 35건으로 45%를 차지했고, 이어 식대 등 수당 폐지 16건(21%), 휴게시간 확대 15건(20%) 등이었다. 해고한다는 제보도 1건 있었다.
직장갑질119 소속 이진아 노무사는 "영세 사업자들을 돕는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면서도 "어렵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꼬인 가운데 제일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임금이어서 자꾸 최저임금을 문제로 지목하는 것이라고 본다. 최저임금을 삭감해 봐야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은 몇십만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업주들 "주휴수당 회피 등 불가피…알바가 나보다 더 받아"
최저임금 인상의 다른 당사자인 영세 자영업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어려움을 토로한다. 달마다 지출되는 임차료 등 각종 비용을 빼고 나면 실제로 남는 돈이 별로 없는데 최저임금 인상은 큰 부담이라며 울상이다.
아르바이트 직원 근무시간을 줄이고, 빈 시간에 자신들이 직접 일하는 방식으로 인건비 지출 증가를 막는 업주들이 많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직원에게는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해 '근무 쪼개기'로 이를 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관악구의 한 편의점은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 직원을 1명 뒀다가 최저임금 인상 이후 2명으로 늘렸다. 1명이 근무하면 주말 이틀간 20시간을 일하게 돼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2명이면 10시간씩이어서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점주 D(47)씨는 "원래 내가 하루 14시간씩 주 5일 일했는데 최저임금 인상 이후 주 6일로 늘렸다"며 "평일 야간 아르바이트가 월 180만원을 가져가는데 이제 내가 챙겨 가는 것보다 아르바이트가 더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천구의 한 커피숍 점주 E(48·여)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르바이트생 2명을 채용했다가 최근 오후 아르바이트생을 주 3일 근무로 바꿨다"며 "2명 모두에게 주휴수당을 주려니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E씨는 "매달 임차료 280만원에 각종 관리비까지 400만원을 내는데 다른 쪽에서 비용을 줄일 수가 없다"면서 "내년에도 10% 이상 최저임금이 오르면 아르바이트생들을 자르고 혼자 일하든가 가게를 접어야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관악구의 한 PC방은 종전까지 24시간 영업하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에는 오전 7∼10시 3시간 동안 영업을 쉬고 있다.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대에 문을 열어봐야 인건비만 나간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서울청사 인근의 한 유명 음식점은 지난해까지 영업 종료시각이 오후 10시였으나 최저임금 인상 이후에는 오후 9시20분 '칼같이' 문을 닫는다. 종업원들은 "최저임금 인상 이후 이렇게 결정됐다"고 귀띔했다.
자영업자들은 일자리 안정기금 등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정부 대책 홍보가 충분하지 못했고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워 보인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레지던스 사업에 종사하는 F(51)씨는 "정부가 일자리 안정기금으로 근로자 1인당 보조금 13만원을 준다고 홍보했는데 이 돈은 사업주에게 주는 것"이라며 "직원들과 연봉협상하다 보니 자신들 급료로 인식해 상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1년간 보조금을 준다고 하는데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 의문"이라며 "급여는 한번 올라가면 삭감이 거의 불가능하고, 근무시간을 단축하자니 불만이 나올 게 뻔해 인원을 2명 정도 줄일까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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