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중소병원] ② 땜질·끼워넣기 처방으론 참사 못 막는다

입력 2018-01-30 15:30  

[지방 중소병원] ② 땜질·끼워넣기 처방으론 참사 못 막는다
면적·규모 등 기계적 법 적용보다 지역·환자 특성 고려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밀양 세종병원은 2010년 4월 11일 포항 여성 전용 노인요양병원(10명 사망·17명 부상), 2014년 5월 28일 장성 효실천 사랑나눔 요양병원(22명 사망·6명 부상) 등 4년 주기 병원 화재 참사의 불명예 기록을 이었다.
밀양 참사는 사망 39명, 부상 151명 등 현재까지 집계된 인명 피해 규모만으로 사상 최악이라는 수식어까지 달게 됐다.
특히 노인 환자가 다수였고 가연성 물질 연소가 대규모 피해로 이어진 점 등은 화재에 취약한 지방 중소병원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중소병원이란 통상 병원급 의료기관을 일컫는 말로 입원환자용 병상 30개 이상, 100개 미만을 갖춘 곳이다. 의원보다는 크고 종합병원보다는 작은 개념이다.

◇ 의원과 종합병원 사이 중소병원은 '관리 사각지대'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 현재 국내 의료기관은 모두 6만4천971개에 달한다.
상급 종합병원 43개, 종합병원 298개, 병원 1천514개, 요양병원 1천428개, 의원 3만292개, 치과병원 223개, 치과의원 1만7천23개, 한방병원 282개, 한의원 1만3천868개였다. 이 중 병원 비중은 2.33%다. 2012년 말 기준 전체 의료기관 5만9천351개 중 1천421개(2.39%)였던 것과 비교해 살짝 줄었다.
경남(4.25%), 전남(4.18%), 전북(3.32%), 강원(3.08%) 등 농촌 지역이 많은 시·도에서의 비중은 평균보다 높았다. 서울의 병원 비중은 1.32%였다.
물리적 거리 탓에 대형 병원 이용이 어려운 시·군에서는 병원급이 최상위 의료기관인 경우가 많다.
농촌 주민들에게는 종합병원이자 대학병원급으로 인식돼 환자들이 몰리기도 한다.
병상 규모 100개 이상인 종합병원의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시설·관리 기준을 피하려고 90대 병상을 꾸린 곳도 많다.
실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의료기관을 포함한 특정 소방대상물은 층수가 4층 이상이면서 바닥 면적이 1천㎡ 이상인 경우에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대개 병원급 의료기관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외면하게 하는 근거가 됐다.


중소병원의 의료기관 인증평가 신청률은 17.7%에 그쳐 최소한의 관리에서도 벗어난 '사각지대'라는 지적도 나왔다.
의료기관 인증평가에는 화재안전에 관한 기준이 포함됐다.
인증을 받으려면 화재 안전관리를 위한 규정과 계획, 소방시설 설치와 같은 예방점검, 소방훈련 실시 등의 항목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종합병원, 요양병원, 정신의료기관은 물론 동네 의원도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되면 방염 기능이 있는 실내 장식물을 써야 하지만 중소병원은 이 또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 고령화 시대 지방병원…노인 환자 많고, 의료 인력은 적고
병원의 허술한 안전관리는 비단 중소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의료기관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우려는 더 커진다.
전북도는 지난해 국가 안전대진단과 민관 합동 점검 등을 통해 13개 종합병원, 81개 요양병원, 106개 병원급 의료기관 등 200곳을 살펴본 결과 41곳에서 지적사항을 적발했다.
비상구 폐쇄, 건물 균열 등 문제가 드러났으며 스프링 클러와 자동화재 탐지설비 계획을 세우지 않은 의료기관도 7곳이나 됐다.
전남도는 203개 의료기관을 점검했는데 이상이 없는 곳은 143곳에 그쳤다.
32곳은 소화기 점검표 미부착, 비상계단 폐쇄 등 현장 조치 명령을 받았으며 28곳은 균열 등으로 보수·보강 지시를 이행해야 했다.
충남도는 99곳 가운데 17곳에서, 충북도는 101곳 가운데 8곳에서 외부 출입문 개폐 불량 등 지적사항을 발견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시·군이 속속 생기는 상황에서 지방의 병원들은 고령 환자 증가와 의료 인력 부족 현상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세종병원에서도 일부 결박이 필요했을 만큼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가 많았지만 당직 인원은 부족했고 병원에 가득한 가연성 물질 연소로 발생한 연기는 피해를 키웠다.
일선 시·군에는 29병상을 운영하는 '병원급 의원'을 운영하면서도 의사는 단 1명뿐이어서 사실상 당직 체계 가동이 불가능한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땜질 처방은 이제 그만…지역·환자 특성 고려한 대책 나와야
세종병원 참사는 병원 화재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기존 요양병원 참사 배경과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위험은 상존하는데도 대책은 단편·지엽적인 수준에 머무른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장성 요양병원 참사 후에 나온 화재 대응 강화 대책도 '요양병원만의 대책'이라는 한계 탓에 중소병원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소하(정의당) 의원은 "지방의 중소병원은 환자가 점차 고령화되는 동안 건물이나 도로 환경도 낡아졌다"며 "취약 지역에 대한 재설계에 가까운 특단의 점검이 필요한데도 그동안 대책은 개정 법률안, 시행령 등에 보완책을 끼워 넣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소방시설 설치 기준을 위험의 특성, 재실자 특성, 화재 크기 등에 따라 분류한다"며 "면적 기준이 아니라 비상시 자기보호능력이 있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등으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전남소방본부 이병산 예방홍보팀장은 "소방시설은 빨리 인지하고 진압하기 위한 것이지 화재를 막는 도구가 아니다"며 "기본적으로 건축주, 소유자, 관리자가 안전관리를 강화한 토대에서 의료법, 건축법, 소방법 등을 함께 손봐가는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경재 박주영 전창해 손상원 기자)
sangwon70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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