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상구·계단 장애물 적치, 공터에는 가연성 물질 쌓아놔
[※ 편집자 주 = 밀양 세종병원 참사는 우리 사회의 병원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웁니다. 특히 밀양처럼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지방도시의 중소병원은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많아 언제든 대형 인명피해가 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 중소병원의 안전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인식 개선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3편의 기사를 제작, 일괄 송고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뉴스 볼 때마다 덜컥 겁나죠. 몇 달은 꼼짝없이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그런 걱정 많이 하죠. 요즘 환자들은 다 불 얘기밖에 안 해요."
29일 오후 전북지역 한 중소도시의 A 병원을 찾았다.
병동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가 주된 대화 소재였다.
병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선 세종병원 참사 속보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환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망자가 더 나오면 안 될 텐데', '진짜 남의 일이 아니네'라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경찰 등 당국이 세종병원 참사 현장 조사에 속도를 내면서 연결 통로 불법 증·개축 등 안전 불감증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병원은 어떨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6층에 도착한 뒤 갑작스러운 화재 상황을 가정해 비상구를 통한 1층으로의 탈출을 시도했다.
탈출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6층 비상구 입구는 청소도구와 휴지통 등으로 막혀 진입조차 여의치 않았다.
손으로 장애물을 밀쳐낼 수는 있지만, 화재 등 급박한 상황에서 환자들이 이곳으로 한꺼번에 몰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어른 한 명이 간신히 빠져나올 정도로 좁은 진입로를 뚫고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향했다.
2∼3층 계단에 다다르자 의료용 폐기물이 가득 담긴 상자들이 쌓였다.
이리저리 상자들을 피해 계단을 내려가기가 불편했다.
계단에서 마주한 한 환자는 "계단에 상자들이 쌓여 있는 것을 종종 봤다"며 "가끔은 쓰레기통으로 계단이 아예 막혀 있을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봤다.
병원 앞 공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스티로폼 더미였다.
어른 키보다 더 높게 쌓인 더미에는 스티로폼과 페트병, 휴지 등 가연성 물질이 가득했다.
누군가 쓰다 버린 라이터와 부탄가스 등 폭발성 물질도 나뒹굴었다.
병원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공터에 화재 위험이 큰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목격됐다.
한 시간가량 공터 주변에서 지켜본 결과, 흡연을 제지하는 병원 관계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스티로폼 더미를 치우는 것도 보지 못했다.
이 병원은 지난해 전북도와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국가 안전대진단에서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세종병원 참사 이후 지방 중소병원의 열악한 안전시설, 둔감한 안전의식들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날 A 병원에서 발견한 문제점이 지방병원들의 공통된 현상이 아닐 수 있다.
소방당국은 의료기관과 환자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평소 안전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소방본부 관계자는 "안전을 소홀히 하면 쉽게 진화할 수 있는 작은 화재도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상원, 박병기, 전창해, 정경재 기자)
ja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