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당 100년] ⑦ 잊히고 훼손되고…유적 관리실태 '부실'

입력 2018-02-01 06:30   수정 2018-02-01 09:32

[한인사회당 100년] ⑦ 잊히고 훼손되고…유적 관리실태 '부실'
러시아에 창당 주역 자취 없어…중국엔 공산당 유적 중심으로 보존
일본서도 기념물 전무…카자흐엔 계봉우·홍범도 이름 딴 거리 조성


(하바롭스크·스보보드니·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세월의 급격한 변화와 무관심 탓으로 선열들의 자취가 서린 독립운동 유적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거나 훼손되고 있다. 나라 밖에 있는 사적지의 사정은 더욱 심하고 특히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은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냉전시절 소련·중국과의 국교가 오랫동안 단절된 데다 우리 당국이 이념 문제로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북한도 김일성을 신격화하느라 다른 사회주의자들의 항일 유적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한인사회당이 1918년 5월 11일 창당의 깃발을 올렸던 러시아 하바롭스크에는 창당대회 개최지와 당 간부회관 자리가 모두 공사 중이며 아무런 표지판도 없다. 하바롭스크 소비에트(인민위원회) 청사로 쓰이다가 지금은 의류 매장이 들어선 건물 외벽에 창당의 산파역이던 김알렉산드라가 외무위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붙어 있을 뿐이다.
김알렉산드라를 비롯한 한인사회당 간부들이 러시아 반혁명세력인 백군(白軍)에게 붙잡혀 끌려온 우초스 절벽과 김알렉산드라가 33살의 나이로 처형된 죽음의 계곡에도 안내판 하나 없다

한인사회당은 창당 2년이 채 되지 않아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上海)파로 양분됐다. 위원장이던 이동휘는 1919년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취임한 뒤 한인사회당 본부를 중국 상하이로 옮기고 하바롭스크에는 지부를 뒀다. 이듬해 1월 러시아 혁명세력인 적군(赤軍)이 이르쿠츠크를 점령하자 한인사회당 창당 멤버이던 오하묵과 김철훈 등은 이르쿠츠크 공산당 한인지부를 조직했다가 1920년 9월 고려공산당 중앙총회로 이름을 바꿨다.
이르쿠츠크파는 국제공산주의조직 코민테른의 지원을 앞세워 이르쿠츠크에서 1921년 5월 고려공산당을 창당했다. 이동휘도 며칠 뒤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 창당대회를 열었다. 이르쿠츠크파는 지금의 밤빌로프극장에서 고려공산당 창당대회를 개최했다. 알렉산드로 밤빌로프는 이르쿠츠크 태생의 희곡작가다.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한인지부(고려공산당 중앙총회로 개칭)가 모임을 연 것으로 알려진 건물은 현재 이르쿠츠크 국립사범대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르쿠츠크파가 적군과 함께 1921년 6월 28일의 상하이파 독립군을 공격해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사건이 자유시 참변이다. 사건 현장인 스보보드니 수라세프카(현 체스노코프역)에도 독립운동사 최대의 비극이 빚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은 없다. 다행히 이곳에서 4㎞가량 떨어진 소벳스키 마을에, 그것도 지난해 6월에서야 추모비가 세워졌다.
한인사회당을 이끌던 이동휘가 말년을 보내던 블라디보스토크의 집터에는 현재 상점이 들어서 있다. 이동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중국 북간도와 상해 등지를 누비며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지금까지도 무덤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행적을 보여주는 해외 유적지의 기념물이 하나도 없다. 1914년 이동휘가 무장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사관학교를 설립했다는 중국 지린(吉林)성 왕칭(汪淸)현 태평촌에도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1919년 한인사회당에 참여해 부위원장 겸 군사위원장을 맡은 김규면의 유해는 모스크바 노보제비치 공동묘지에 묻혔다. 무장독립투쟁을 벌이며 적군의 일원으로 반혁명세력과도 싸웠다가 1969년 모스크바 인근에서 숨졌다. 1967년 러시아혁명 50주년을 기념해 적기훈장을 받았다. 그의 묘소에는 사진과 함께 한글 이름이 붙어 있고 태극기도 꽂혀 있어 비교적 보존 관리 상태가 나은 편이다.
고려혁명의용군대 소대장으로 백군의 일원이던 일본군을 시베리아와 연해주에서 몰아내는 데 공을 세운 강상진의 묘소도 모스크바 외곽 프레지노 공동묘지에 있다. 강상진이 용맹을 떨친 하바롭스크 인근 볼로카예프카 전투에서는 독립군 12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전적지에 세워진 기념 조형물에는 이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울란우데 키로프광장에는 한국어·몽골어·중국어·일본어로 '공산주의운동을 위해 싸운 사람들에게 바치는 탑'이라고 적힌 조형물이 있다. 연해주 올가항 전투에서도 한인 빨치산 35명이 백군을 상대로 악전고투하다가 22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곳에는 희생자들의 묘역이 있고 추모탑도 세워졌다.

중국에서도 사회주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한 것과 달리 늦게까지 조선족 마을이 유지돼오긴 했지만 일본이 만주를 점령해 독립유적을 대부분 파괴한 데다 중국 당국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과 손잡고 싸운 독립군 전적지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김원봉이 1938년 후베이(湖北)성 한커우(漢口)에서 창설한 조선의용대 관련 유적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일부가 북쪽으로 떨어져나와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라는 이름으로 1941년 타이항산(太行山)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때 목숨을 잃은 윤세주와 진광화 열사의 유해가 허베이(河北)성 한단(邯鄲)시 외곽 스원춘(石問村)에 묻혔다가 1950년 한단시 시내 국립묘지인 진지루위(晉冀魯豫) 열사릉원에 안장됐다.
조선의용대는 1942년 조선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 팔로군에 소속된 김무정을 총사령관으로 선출했다. 이때부터 사실상 중국공산당 홍군의 지휘를 받게 됐다. 2004년 윤세주 등의 옛 묘역 아래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이 들어섰다. 한단시와 서(涉)현 정부가 건물을 짓고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이 전시를 지원하고 있다. 일제 침략에서부터 조선의용대의 탄생과 활동, 오늘날 한중관계까지 관련 사진과 자료를 전시하고 한국어와 중국어 설명을 달아놓았다.
산시(山西)성 쪽 타이항산 자락에도 팔로군총부기념관, 조선의용대 주둔지, 순국선열 전적비, 무명열사 묘 등이 있다. 중국공산당 간부이던 주덕해와 함께 항일운동을 펼치다가 순국한 윤락범·태동식·이종근·오복의 추모비도 헤이룽장(黑龍江)성 미산(密山)시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정율성이 팔로군대합창 등을 작곡했던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의 노신(魯迅)예술문학원, 김산(장지락)이 강의하던 중국항일군정대학 터, 김성숙이 다니던 베이징(北京)의 민국대학, 김샨이 공부한 베이징 협회의학원 자리, 김산이 활동한 상하이 중국좌익작가연맹 사무실, 김원봉이 살던 충칭(重慶) 집 등에는 안내판이나 기념물이 설치돼 있지 않다.


일본에서도 1920년부터 유학생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 독립운동 단체들이 생겨났으나 이들의 자취를 찾기는 어렵다. 독립기념관의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정보에 나타난 36건 가운데서도 사회주의 관련 유적은 전무하다.
고려인들이 강제이주한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는 계봉우와 홍범도 묘소가 있고 이들의 이름을 각각 딴 거리도 조성돼 있다. 이동휘의 평생 동지인 계봉우는 한인사회당 기관지 주필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조선문법'와 '조선역사' 등을 집필한 국어학자·역사학자이기도 하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는 레닌으로부터 레닌 이름이 새겨진 권총, 금화 100루블, '조선군 대장'이라고 쓴 레닌 친필 증명서 등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에도 한인사회당 간부였던 이인섭의 거주지와 묘소, 빨치산 출신 최호림의 무덤 등이 있다.
고려인이 많이 거주하는 이들 지역에서는 독립유공자 후손을 중심으로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우리나라와 현지 당국의 지원과 협조가 뒤따랐기 때문에 비교적 사정이 나은 것으로 풀이된다.
몽골에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경성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이태준은 몽골 왕의 어의가 돼 전염병 퇴치에 크게 공헌했고, 코민테른이 한인사회당에 지원한 독립자금을 운반하다가 백군에 붙잡혀 38세의 나이로 순국됐다. 울란바토르의 이태준 기념공원에는 가묘와 묘비,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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