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가스 조작에 실험결과까지 조작 시도하다 결국 묻었다
독일 신문 빌트, 실험결과 비밀 보고서 입수, 분석해 보도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독일 자동차업계가 '야심 차게' 추진한 '원숭이 가스실 실험'의 결과를 기를 쓰고 은폐하려 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실험 비밀 보고서를 입수, 분석한 결과 "실험결과가 당초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로 나타났고 그대로 공개되면 독일 자동차업계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라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일 자동차업계가 돈을 줘 설립, 운영해온 단체 EUGT는 2015년 봄 미국 민간 의학연구소인 러브레이스호흡기연구소(LRRI)에 기밀실에 원숭이 10마리를 가둔 채 하루 4시간씩 자동차 배출가스를 맡게 하는 실험을 의뢰했다.
아직 배출가스 조작문제가 미국환경청(EU)에 의해 공식 적발되기 몇 개월 전에 의뢰한 이 실험의 당초 목적은 폴크스바겐(VW) 승용차 비틀의 디젤 신형 차종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현저하게 줄어 건강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 당국과 소비자들에게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EUGT는 실험 결과를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빌트는 '연구번호 FY15-050'이라는 제목의 LRRI 실험보고서엔 원숭이들이 어떻게 끔찍한 고통을 받았으며, EUGT와 LRRI 등이 어떻게 연구결과 조작을 시도했는지가 낱낱이 드러나 있다고 전했다.
실험에 동원된 원숭이들은 특수유리로 만든 밀폐실에서 매일 4시간 배출가스를 맡아야 했고, 연구팀은 오전과 오후 총 3회 특수내시경을 코와 입을 통해 호흡기관 등에 넣어 혈액 등을 채취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 "잦고, 폭력적인 검사에 원숭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적었다.
빌트의 의뢰로 이 보고서를 검토한 오스트리아 빈의과대학 환경보건학 전문가 한스-페터 후터 교수는 "유럽의 임상시험 윤리위원회 같으면 절대 승인해주지 않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임상시험"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원숭이 실험 자체가 최근 알려지면서 엄청난 비판을 받긴 했지만 어쨌든 미국에선 실험 승인을 받은 것인데도 왜 공개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었다. 더욱이 VW 비틀엔 이미 연구팀도 모르게 배출가스 조작장치가 달려서 질소산화물이 실제 도로주행 때의 40분의 1만 나오도록 돼 있어 비교 대상인 구형 포드 디젤 차량에 비해선 성능이 월등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 상황이었다.
후터 교수는 "VW 신형 가스에 노출된 원숭이들에서 검츨된 염증 지표물질들이 낡은 포드에서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실험보고서에 적혀 있다"고 말했다. 업체들이 조작장치까지 쓰면서 원했던 것의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후터 교수는 이유나 과정은 알 수 없지만 (포드차로 먼저 실험을 했는데) "이 앞선 실험에서 이미 기관들이 손상됐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 이 실험을 위해 LRRI에 64만9천달러(약 6억9천만원)를 준 EUGT는 2015년 12월 3일까지 최종 보고서를 받기로 했으나 이런 중간보고서가 나오자 잔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LRRI는 EUGT사무총장과 VW 미국법인 환경책임자 등과 연락하며 '결과의 심각성을 축소'하거나 '아예 비틀 관련 결과는 빼는' 방법 등 실험결과를조작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며 '잔금' 지급을 요구한 일들이 이메일 등에 남았다. 결국 EUGT가 원하는 내용의 최종 보고서는 나오지 않았고, LRRI 회계부는 "우린 7만1천857달러를 잃었다"고 연구원들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이후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확산됐고, EUGT는 2017년 6월 말로 청산절차를 밟고 해체됐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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