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판석 PD "원작소설에 빨려들어가…'진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UHD 리마스터링해 11년만에 재방송…"인간이란 무엇인가 돌아보는 계기 되길"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저도 시청률이 5%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다시 방송되는 것만도 영광이고 감개무량인데…."
MBC TV '하얀거탑'의 안판석(57) PD는 이렇게 말하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11년 전에 방송한 '하얀거탑'의 재방송 시청률이 5%를 기록했다. 지상파 신작 드라마의 시청률이 1~2%까지 떨어지는 세상이다. 요지경이자, 파란이다.
인터넷에서는 마치 새로운 드라마가 방송되는 양 매회 '하얀거탑'의 줄거리를 전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강산이 한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으니 '하얀거탑'을 처음 보는 시청자도 많을 것이다.
MBC가 지난해 파업에 따른 후유증으로 고육지책 재방송 편성한 '하얀거탑'이 신작 드라마 못지않은 시청률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2007년 방송된 '하얀거탑'은 기존 HD(고화질) 영상을 선명도 개선 및 노이즈 제거, 색보정을 통해 UHD(초고화질) 영상 재가공 및 더빙(효과 및 믹싱 보완) 작업을 거쳐 1월22일부터 MBC 밤 10시 월화극으로 방송 중이며, 31일부터는 수목극으로도 편성됐다. 총 20부작으로, 오는 3월12일 MBC가 새로운 월화극, 수목극을 선보이기 전까지 월화수목 연속 편성된다.
지난 31일 전화로 만난 안 PD는 "옛날 작품이냐 요즘 작품이냐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며 "나도 케이블채널을 돌리다 '사랑이 뭐길래' '모래시계'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의 재방송이 우연히 걸리면 계속 보게 된다. 당대에 괜찮은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그 힘이 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MBC가 '하얀거탑'을 재방송한다고 했을 때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면서 "그런데 시청자 반응을 보니 '하얀거탑'도 11년 전 작품이지만 그런 평가를 받는 게 아닌가 싶다"며 웃었다.
예전 작품이라 인물들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등에서는 '과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UHD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친 덕에 '하얀거탑'은 11년이라는 시간차를 상당히 극복한 질감과 색감의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안 PD는 "리마스터링이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미 방송된 작품이지만 새로운 작품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 같은 공정이 필요하다"며 "20부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라 작은 나사 하나를 건드리면 전체를 다 보정하고 손대야 하는 끝도 없는 작업이다. 후배들이 무척 애써서 작업해 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2007년 버전과 거의 똑같지만 회당 방송시간은 다소 차이가 있다. 현재는 지상파 3사가 평일 밤 10시 드라마의 방송시간을 광고 포함 회당 70분 편성하고 있지만 11년 전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방송 3사간 그런 약속도 없었고 '하얀거탑'은 주말극으로 편성돼서 회당 방송시간이 70분 편성에 딱 맞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재방송하면서는 70분에 맞춰 부득이하게 삭제해야 하는 장면도 있을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어요. 그래도 최대한 내용에 무리가 가지 않게 편집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잘 해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2007년 1~3월 방송된 '하얀거탑'은 야마사키 도요코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메디컬 드라마다. 일본 후지TV에서도 동명의 드라마가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안 PD는 "잘못 알려진 게 하나 있는데 우리 '하얀거탑'은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게 아니다"며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고, 일본 드라마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계약에도 일본드라마의 오리지낼러티를 침해하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었어요. 저는 원작소설을 읽고 드라마화를 결정한 것이었고 일본 드라마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얀거탑'은 대학 병원을 무대로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을 가진 의사 장준혁과 병원 내 권력 암투, 점잖은 엘리트 의사들의 가면을 벗겨낸 모습 등을 조명하며 사랑받았다. 첫회 11.8%(AGB닐슨코리아)에서 출발해 마지막에 20.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안 PD는 "원작소설을 읽는 데 소설의 '진짜스러움'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1960년대 나온 원작소설을 2006년 초에 읽었는데도 그 이야기들이 '진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누구나 작품을 진지하게 만들겠지만 이 작품은 정말로 진짜같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난같이 보이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죠. 요즘 '리얼'(real)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하얀거탑'은 읽는 내내 진짜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드라마로 만들면서도 그 가치만은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살아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죠. 지금 이 드라마가 인기라면 그 역시도 살아있는 진짜 같은 느낌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주인공 장준혁을 맡은 김명민은 '하얀거탑'에서 보여준 신들린 연기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안 PD는 "지금 다시 봐도 김명민은 진짜 하얀거탑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명민 씨가 너무 잘해서 오히려 제가 고민에 빠졌어요. 장준혁은 나쁜 남자가 분명한데 시청자가 장준혁을 지지하고 닮고 싶어하는 상황이 됐어요.(웃음) 나쁜 남자를 좋아하게 된 감정은 무엇인지, 자기 모순을 돌아봐야 하는데 김명민 씨의 장준혁에 다들 빠져 들어버렸어요."
안 PD는 "김명민 씨뿐만 아니라, 이선균, 김창완 씨 등 모든 배우들이 실제 극중 인물이 됐던 것 같다. 나도 찍으면서 그들을 배우가 아닌 극중 인물로 여겼다"고 돌아봤다.
연출자가 생각하는 '하얀거탑'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MBC 출신인 안 PD는 '아내의 자격'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등 최근에도 히트작을 꾸준히 내며 왕성하게 '스타 PD'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3월에 손예진 주연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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