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기술철학자 스티글레르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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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미래 사회에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기술철학자이자 문화이론가인 베르나르 스티글레르(66)는 자동화가 몰고 올 고용위기가 처음에는 몹시 나쁜 소식처럼 들리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주 좋은 소식이라고 말한다.
자크 데리다의 제자이기도 한 스티글레르는 신간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미래 사회를 바라보는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저널리스트 아리엘 키루와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책에서 스티글레르는 '고용'과 '일'의 개념을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고용'은 노동자들이 급여를 받는 활동이다. 반면 '일'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뭔가를 성취함으로써 앎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정원을 가꿔 식물에 대한 앎을 키우고 정원사나 식물학자와 공유할 수 있다면 정원을 가꾸는 것도 일이다. 일하면서 약간의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나의 독특성과 내 곁에 있는 타인들의 독특성을 수립하는 데 이바지하는 활동에 일의 초점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스티글레르는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더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일한다는 의미가 개인화, 발명, 창조, 사유 등이라고 한다면 피고용인들은 일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자기 행위의 창조자가 아닌 추종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동화로 인한 고용의 종말은 진정한 의미의 일을 부활시킬 수 있게 되는 만큼 나쁜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희소식이 되는 셈이다.
스티글레르는 고용의 몰락을 통한 일의 부활에는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형태의 경제가 필요하며 기본소득을 기초로 하고 그 위에 기여소득을 더한 재분배 방식을 제안한다.
기여소득은 프랑스의 예술인실업급여제도인 엥테르미탕을 모델로 삼는 방식이다. 자신을 개발하고 사회가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앎의 형태들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기여소득을 통해 사람들이 앎을 배우고 만들고 발전시킨 뒤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
대담에 참여한 저널리스트 키루는 스티글레르의 생각을 '고용을 죽여 일을 살리기를!'로 요약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임금제가 중심이 되지 않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런 운동과정에서 이 철학자의 재능이 빛을 발한다. 우리와 정책결정자들의 뇌리에 단단히 박혀 있는 신념을 뒤흔들어 버리는 것이다. 고용에 대한 강박관념일랑 꺼져버려라!라고." 권오룡 옮김. 140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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