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이집트·캄보디아·온두라스·러시아 등 사례로 지적
"미국, 친미 정상의 반(反)민주주의 행보 모르쇠…이란·북한만 비판"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세계 각국의 '스트롱맨'이 미국의 침묵 속에 정적을 탄압하며 권좌를 지키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최근 이러한 모습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는 오는 3월 대선을 앞둔 이집트다.
2014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자리를 꿰찬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번에도 자리를 지킬 것으로 관측된다.
임기 내내 반대파에 대해 고문과 투옥 등의 인권 유린을 일삼은 그는 이번 선거기간에도 잠재적 대선 후보나 실무진을 체포하며 '불공정 게임'을 하고 있다.
야당은 이에 반발하며 대선을 보이콧하고 있지만, 한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 등 서방은 아무런 조처를 하고 있지 않다고 NYT는 꼬집었다.
이에 지난해 백악관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엄청난 사람(fantastic guy)"이라는 극찬까지 들은 엘시시 대통령은 눈치를 보기는커녕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등지고 좁은 의미의 '미국 우선주의' 어젠다를 강조하는 동안 세계 각국의 권위주의 지도자들의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 NYT의 진단이다.

캄보디아에서는 33년간 철권통치로 권좌를 지킨 훈센 총리가 오는 7월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정부 요직에 가족과 심복들을 배치하고, 반대파 제거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 대선 당시 자신을 공개 지지한 훈센 총리를 비판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지난해 11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엄지를 치켜들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훈센 총리는 인권에 무관심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칭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연일 부정선거 규탄 시위로 몸살을 앓는 온두라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주기구(OAS)와 유럽연합(EU)은 선거 절차가 불법적으로 진행됐다며 재선거 시행을 권고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친미주의자인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의 승리를 축하하며 재선을 인정했다.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독주체제를 굳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브로맨스'는 알려진 지 오래다. 푸틴의 대항마로 꼽혔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3월 대선 출마를 금지당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과의 더 가까운 관계만을 희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립서비스'로도 보편적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강조한 적이 거의 없다.
다만, 자신과 적대적인 국가에 대해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란이나 북한, 베네수엘라 등에는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곤봉'을 휘두르는 것은 주저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정연설에서도 탈북자 출신 지성호 씨를 소개하며 북한 인권의 실상을 고발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악의 행동을 하면서도 국제 사회의 이미지를 신경 쓰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가치 있는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국무부 인권 담당 차관보를 지낸 톰 말리노스키는 "나쁜 정부는 어쨌거나 나쁜 행동을 하지만 적어도 결정을 내릴 때 미국으로부터 예상되는 반응을 고려한다"며 민주주의 가치 수호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gogog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