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주말인 3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에서 누전으로 추정되는 불이 났으나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이 2시간 만에 진화됐다. 불은 오전 7시 56분께 본관 3층 5번 게이트 천장에서 발화했다고 한다. 주말의 이른 아침이어서 긴장이 느슨해지기 쉬운 시간대였다. 하지만 병원 측의 신속하고 침착한 대응과 '골든타임'을 지킨 소방당국의 긴급 출동, 스프링클러 등 방재설비의 정확한 작동 등이 어우러져 완벽에 가깝게 피해를 막았다. 제천과 밀양에서의 대형 화재로 큰 충격을 받은 국민에게 우리도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준 사례로 평가된다. 아울러 '안전한 대한민국' 건립에 나선 정부에도 생생한 교훈이 됐을 것 같다.
이번에 신촌세브란스병원은 평소의 안전의식 고양과 방재 시스템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히 보여줬다. 무엇보다 병원 측은 정기적으로 훈련하면서 숙지해온 화재 발생 매뉴얼을 철저히 지켰다. 불이 나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신고해 관할 소방서가 10분 만에 소방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할 수 있게 했다. 소방서는 도착 1시간 만에 초기진화에 성공했고, 나머지 1시간 동안 잔불 정리와 현장 수색 등을 마무리했다. 발화 지점의 스프링클러와 연기 확산을 막는 방화 셔터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병원 관계자들은 당황하지 않고 불이 난 병동과 응급실 등의 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신속히 옮겼다. 불이 난 뒤 환자와 보호자, 병원 직원 등 300여 명이 긴급대피했지만 피해는 경미하게 연기를 마신 8명에 그쳤다. 모두 매뉴얼대로 한 덕분이었다. 이 병원에 입원 중인 부인을 찾았다가 함께 옥상으로 대피한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소방관과 병원 의사, 간호사, 직원들이 100% 완전하게 대처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신촌세브란스는 서울에서도 손꼽는 유명병원이다. 하지만 큰 병원이라고 해서 모두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연히 잘해야 하는 기관도 막상 일이 터지면 형편없이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 병원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제천과 밀양 참사의 악몽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불과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제천과 밀양에서 큰불이 나 70명의 시민이 생명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그중 한 곳은 지방의 중소병원이었다. 현재까지 41명의 인명피해가 난 밀양 세종병원도 화인은 신촌세브란스와 같은 누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이 나고 벌어진 상황과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스프링클러가 전혀 작동하지 않아 초기진화는 꿈도 못 꿨고, 방화벽이 내려오지 않아 인체에 해로운 연기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졌다. 사망자는 대부분 연기를 마시고 질식했다. 신촌세브란스 화재에서 별다른 인적 피해가 없었던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밀양과 제천 화재를 되돌아보며 엄청난 인명피해의 참담함을 곱씹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인 듯하다.
정부는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전국 기초·광역단체장 영상회의를 열어 대대적인 안전점검 계획을 확정했다. 정부 스스로 '국가안전 대진단'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서슬이 시퍼렇다. 올해 점검 대상 30만 곳 가운데 6만 곳을 위험시설로 분류해 4월 초순까지 두 달간 전수조사한다고 한다. 위험시설은 중소형병원·요양병원 6천643곳, 쪽방촌·고시원 8천387곳, 산후조리원·대형 목욕업소 2천979곳, 전통시장 205곳 등이다. 제천 화재가 터지고 곧바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이처럼 단호하게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안전의 양극화' 문제다. 비슷한 원인으로 불이 났는데 결과에선 큰 차이를 보인 신촌세브란스병원과 밀양 세종병원 사례를 세심히 들여다봤으면 한다. 각 시설의 관리 책임에 허점이 있으면 수시점검과 행정처분, 처벌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도중에 유야무야하지 않고 지속해서 강하게 하면 분명히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도 있을 것이다. 경영여건이 나쁘고 재정능력도 취약한 지방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 같은 곳에 서울 대형병원 수준의 안전관리를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사회적 안전 인프라를 확충하는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재정 보조 등 다양한 인센티브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