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칠레주교 성추행 은폐의혹 알고도 외면했나

입력 2018-02-06 11:15   수정 2018-02-06 11:36

교황, 칠레주교 성추행 은폐의혹 알고도 외면했나
AP '3년전 은폐 고발하는 피해자 서한' 공개
교황 실제 읽었는지 미확인…AP "직접전달 사절 갔다"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칠레 성직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로부터 은폐 의혹을 담은 편지를 2015년에 받았다고 AP통신과 BBC가 5일 보도했다.
이들 매체는 최근 해당 성직자를 둘러싼 스캔들을 중상모략으로 치부했다가 비판을 받은 교황이 은폐 정황을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이 서한을 토대로 제기했다.
보도에 따르면 1980년대 페르난도 카라디마 신부의 성추행 피해자 중 한 명인 후안 카를로스 크루스가 2015년 3월 교황에게 보낸 8쪽짜리 분량의 편지가 공개됐다.
크루스는 이 편지에서 카라디마 신부의 성추행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며 카라디마 신부의 제자인 후안 바로스 주교가 성 추문을 덮었다고 주장했다.


이 편지는 교황이 지난달 칠레 방문 때 2015년 칠레 오소르노 주교로 임명된 바로스 주교를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 비판을 받은 후 공개됐다.
크루스는 스페인어로 작성한 편지에서 "교황 성하, 저는 싸우고 울고 고통받는 것에 지쳐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고 시작했다.
그는 "우리의 얘기는 잘 알려져 있어 이런 성추행 경험의 끔찍함과 얼마나 자살하고 싶은지만 말씀드리고 싶다"고 적었다.
크루스는 또 바로스 주교가 "카라디마의 모든 비열한 일을 했다"며 그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크루스는 "카라디마의 방에 있을 때 더 힘들었다"며 "바로스는 자신이 카라디마에게 키스하지 않을 때는 카라디마가 우리, 미성년자들을 건드리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바로스 주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이러한 성추행을 목격한 증인이라고 주장했다.
크루스는 "제발 교황님,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 말아달라"며 "다른 모든 것을 알고도 당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많은 사람이 있다"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교황이 이 편지를 실제로 읽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크루스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숀 오말리 추기경이 2015년 나중에 자신에게 전화해 그 편지를 교황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교황청 미성년자보호위원회 위원들이 그해 4월 바로스 주교와 관련한 서한을 교황에게 손수 전달하기 위해 로마에 따로 사절단을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편지는 교황이 지난달 칠레 방문 때 보인 행적과 배치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교황은 바티칸 귀국길에 AP통신 기자에게 "내게 피해자들이 있었는지를 말해달라.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피해자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지난달 18일 칠레 북부 항구도시인 이키케에서는 바로스 주교에 대한 칠레 기자의 질문에 "바로스 주교에 대한 증거를 갖고 오면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라며 단 하나의 증거도 없고, 모든 것이 중상모략이다. 알았어요?"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아울러 교황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바로스 주교를 비난할 수 없다. 또한, 나는 그가 결백하다고 믿고 있다"며 바로스 주교가 칠레 오소르노 주교직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바로스 주교는 수십 명의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2011년 면직당한 카라디마 신부의 제자로, 그동안 카라디마 신부의 성추행을 묵인해왔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이에 바로스 주교는 자신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카라디마 신부의 성추행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해 왔다.
그러나 카라디마 신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은 바로스 주교가 성추행 장면을 목격해놓고도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수년 동안 주장해와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교황청은 이번 피해자 편지 공개와 관련해 아직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gogo21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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