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심 결론과 1심 재판부 판단 주목…이재용 사건과 공소사실 차이점은 변수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에서 법원이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작성한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남아 있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검찰과 특검은 이 업무수첩을 '사초(史草) 수준'이라고 높이 평가했지만,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재판에서는 증거능력(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을지, 더 나아가 증명력(증거로서 혐의를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 인정될지 관심을 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놓고 법원 안팎에서는 향후 재판을 둘러싼 여러 관측이 나온다.
특검은 안 전 수석의 수첩이 박 전 대통령의 업무지시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증거라고 봤다. 일자별로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기재돼 수사 당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을 비롯해 박 전 대통령, 최씨 등 국정농단 사건의 피고인들은 재판에서 이 업무수첩을 증거로 채택하는 데 반대했다. 검찰 등에 수첩이 입수되는 과정에 위법성이 있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앞서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수첩 내용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적어놓은 자체는 하나의 사실이라며 재판에 참고할 '간접 증거'로 인정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수첩이 간접 증거로 사용될 경우 "우회적으로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며 증거능력 자체를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라는 안 전 수석의 진술을 전제로 그 모든 내용을 '답안'으로 삼아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단독면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진실한지를 판단할 증거로 쓰는 것은 비약이 있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는 상급법원인 서울고법의 판단인 만큼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1심 판결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1심 재판부가 지난달 26일 예정됐던 최씨의 선고를 오는 13일로 연기했을 때 이 부회장의 항소심 결과를 참고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혐의사실 중 승마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미르·K스포츠재단 사안을 두고 이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내용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와 실체가 같다는 점에서 1심 재판부로서는 항소심 판단을 참작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삼성 측에 압력을 행사해 지원을 받아냈다는 취지에서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항소심과 같은 결론이 나오리라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1심 재판부가 항소심 판단과 마찬가지로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할 지마저도 미지수라는 의견도 있다.
사안의 구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형사재판에서는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입증 정도의 차이도 고려될 수 있다.
안종범 수첩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모두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어떤 지시를 했고, 최순실씨와 관련해 어떤 불법행위를 했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다.
재판부는 앞서 선고한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의 '영재센터 삼성 후원 강요' 사건, 광고감독 차은택씨의 '광고사 지분 강탈' 사건 등에서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증거로 인정한 바 있다.
또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유무죄 판결은 뇌물 공여자인 이 부회장과 달리 뇌물 수수자로서 판단할 사안이므로 이 부회장의 재판과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ae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