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 화상이 들려주는 '나의 화랑, 나의 화가들'

입력 2018-02-07 07:35   수정 2018-02-07 07:57

20세기 최고 화상이 들려주는 '나의 화랑, 나의 화가들'
'피카소의 화상' 칸바일러 대담집 국내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어느 날 난 이 작은 화랑에 있었어요. 내가 보기에 놀랄만한 젊은이가 들어오는 것이었어요.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에 작고 다부졌으며 먼지가 잔뜩 낀 신발에 옷은 형편없이 입었는데 어쨌든 지저분한 상태였지만 눈빛만은 놀랍게 보였지요."
신간 '나의 화랑, 나의 화가들'(율 펴냄)에 소개된 위대한 화상과 위대한 거장의 첫 만남이다.
독일 젊은이 다니엘-헨리 칸바일러는 1907년 주식중개소를 그만두고 파리 비뇽가의 한 귀퉁이에 화랑을 열었다. 그가 훗날 세계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스페인 출신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처음 마주친 곳도 이곳이었다.
칸바일러는 '피카소의 화상'으로 불린다. 무엇보다 피카소가 거장으로 손꼽히게 되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비롯해 입체파 경향 작품들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보았고 적극 키워냈다는 데 그의 빼어남이 있다.
여든을 앞둔 화상은 50여 년 전 주변 화가들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던 '아비뇽의 여인들'을 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피카소에게) 그 그림이 너무 위대해 보인다고 말했었다는 걸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으니까요."
누구도 산다는 사람이 없었기에 칸바일러는 피카소의 작품들을 사들이고 또 사들였다. 판매 대금의 일부는 작가에게 돌아갔다. 근현대미술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두 사람의 진하고도 깊은 관계는 그렇게 시작됐다.
책은 칸바일러와 언론인 프랑시스 크레미유가 1960년 프랑스Ⅲ 방송을 통해 나눈 대화를 기록한 대담집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금융인으로 살 운명으로 보였던 젊은이가 어떻게 미술과 인연을 맺었고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후안 그리스, 페르낭 레제 등 입체파 작가들의 조력자가 됐는지를 칸바일러 자신의 입으로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세잔과 고갱 등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애호했지만 화상이 되고 난 뒤부터는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지나간 시대였고, 내 나이에 맞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는 데서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을 읽을 수 있다.
입체파를 포함해 문화예술계의 흐름뿐 아니라 두 차례의 전쟁으로 소용돌이쳤던 당시 사회의 풍경도 생생하게 담겨있다.
크레미유는 "그를 빼고 현대 미술사를 들춰내 본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전문가, 투기꾼 등등이 요동치는 예술계에서 독점권과 장기 계약, 그리고 경계심을 굳건히 함으로써 순수한 원칙을 고수했다"고 평가했다.
작가는 대담 초반부에서 지난 인생과 시대를 돌아보며 "위대한 화가들이 위대한 화상을 만든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후반부에는 10년 후 크레미유와 칸바일러의 미공개 대담도 실렸다.
윤은오 옮김. 338쪽. 1만6천 원.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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