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셰일 붐이 만든 석유라이벌 러시아-사우디 '밀월'

입력 2018-02-08 11:04  

미국 셰일 붐이 만든 석유라이벌 러시아-사우디 '밀월'
감산 공조 이어 경협 확대…미사일방어시스템 거래도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해묵은 불신과 반목을 젖혀두고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7일 보도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정학적 문제 등에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도 지난 18개월 동안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면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계 전체 산유량의 약 5분의 1을 담당하는 양국이 이처럼 손을 맞잡는 것은 수년 전만 해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계기는 사우디의 전통적 우방인 미국이 제공한 것이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셰일 석유를 생산하면서 유가가 떨어지자 산유국들은 당혹했고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1위와 2위 산유국들인 러시아와 사우디는 유가를 받치기 위해 생산량과 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선도했다.
미국의 산유량은 올해와 내년에 사상 최고치에 도달해 2위인 사우디를 추월하고 1위인 러시아에 필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맞서 사우디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글로벌 석유시장의 옛 질서를 되찾는 데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칼리드 알 팔리흐 사우디 석유장관이 러시아령 북극 지역에 위치한 사베타 항구를 방문한 것은 협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70억 달러가 투자된 현지 액화천연가스 공장의 가동 행사 참석이 방문 목적이었다.
영하 30도의 혹한 탓에 털모자와 패딩 잠바로 무장한 알 팔리흐 장관은 미소를 머금은 채 장갑을 벗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 장관 등과 악수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우리 천연가스를 구매한다면 당신들의 석유를 아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알 팔리 장관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가 여기에 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화답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에너지 부문의 협력을 합작기업, 상호 투자, 군사장비 거래 등을 포함한 여타 부문으로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사우디와 미사일 방어 시스템 판매 협정을 맺었다.
알 팔리흐 장관은 FT 회견에서 경제와 에너지 방면의 제휴 확대는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러시아에 투자하고 그들은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 경제는 "다변화와 첨단기술 개발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닮아있다"고 강조했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러시아 투자를 위해 100억 달러의 자금을 할당하고 이미 10억 달러를 집행한 상태며 러시아의 펀드들도 사우디를 눈여겨 보고 있다. 양국은 100억 달러 규모의 공동 기술펀드도 아울러 조성했다.
일부 석유시장 관측통들은 미국의 셰일 석유 증산이 사우디가 주도하는 감산 효과를 상쇄, 혹은 무력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 양국은 그러나 셰일 석유가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할 수준은 못 된다고 보고 있다.
국제 유가가 최근 배럴당 70달러 선까지 올라 사우디와 러시아는 일단 한숨을 돌린 상태다.
사우디의 석유 수입이 늘어나면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가치도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대선을 앞둔 러시아로서도 석유 수출의 증가를 반기는 입장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그러나 몇 가지 사안에서 사우디와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가 상이한 만큼 에너지 동맹이 견고하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중동 전체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는 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하고 있어 사우디와는 반대편에 서 있고 이라크의 쿠르드족 정부,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과도 에너지·금융 협정을 맺고 있다.
jsm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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