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8일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을 진행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병력 1만3천여 명과 첨단 전략무기를 동원해 군사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동원된 무기는 예년보다 절반 이상, 행사 시간은 1시간가량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시험발사 성공과 함께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와 '화성-15'가 모두 등장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전날 열병식을 여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난을 고려해 행사 수위를 조절하면서 핵 무력도 과시한 셈이다. 결국, 핵·미사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북한이 올해부터 건군절을 실제 정규군이 창설된 2월 8일로 바꾸고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4월 25일에 건군절 행사를 해오다가 원래대로 환원한 것이라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은 열병식에 외신기자들을 초청했다가 취소했고, 이날 TV 생중계도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병식 노출을 줄이려고 신경을 쓴 셈이다. 지난해 4월 김일성의 105번째 생일(태양절) 열병식 때는 100여 명의 외신기자를 초청해 ICBM급 미사일을 보란 듯이 공개했다. 당시 CNN, BBC 등은 열병식 현장의 기자를 연결해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원래는 이번에도 작년 규모로 열병식을 준비했던 것 같다. 북한은 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정주년'에 대대적 행사를 가져왔다. 그런데도 북한이 이번 열병식을 실황 중계하지 않고 나중에 녹화 편집한 부분만 공개한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대부분의 열병식을 생중계로 보여줬던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물론 북한 나름의 전략적 계산이 깔렸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을 생각하고 국제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북한이 화성-14형과 화성-15형을 열병식에 노출함으로써 다른 부분이 빛을 잃은 것은 아쉽다. 화성-15형 미사일은 지난해 11월 말 시험발사에 성공할 당시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은 입증되지 않았지만, 비행 거리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이 건군절 열병식을 하더라도 화성-15 등을 동원하지 않으면 미북 대화에 긍정적 신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건군절 열병식이라고 해서 꼭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야 하는 건 아니고, 열병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협상 의사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화성-15의 열병식 등장은 결국 '핵 무력 완성'을 기정사실로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의 비핵화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청와대 만찬회 동에서, 최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이끈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현재는 제재와 압박에 방점이 있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문 대통령은 10일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접견하고 오찬을 함께 한다. 김여정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이 나온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의 진짜 의중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관계가 중대한 갈림길에 선 것은 분명하다. 당장 비핵화 협상을 거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되살린 남북 대화 기조는 이어가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머지않은 장래에 협상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씨앗이라도 뿌려야 한다. 모쪼록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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