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대·성화봉 디자인한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88년 태평양 건너에서 조국의 첫 올림픽을 TV로 지켜보던 동포 중에는 38살의 디자이너 김영세도 있었다.
1975년 유학차 미국으로 떠나온 그는 귀국하지 않고 유수 디자인 회사를 돌며 실무를 익혔다.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회사를 세운 것이 서울올림픽 즈음이었다. "13년간 떠나 있었기에 한국이 그만큼 변한 것을 모르다가 서울올림픽을 보면서 굉장히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때는 젊은 디자이너였던 제가 30년 뒤 올림픽에서 이렇게 역사적인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준 대한민국에 정말 감사합니다."
김영세(68) 이노디자인 대표는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감개무량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틀 전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주목받았던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가 그의 작품이다. 일 때문에 평창올림픽 개막식도 미국에서 TV로 시청했다는 김 대표를 전화로 만났다.
김 대표는 2년 전 성화봉 디자인 의뢰를 먼저 받았다. 그는 오륜기, 오대륙에서 볼 수 있듯이 올림픽에서 '5'라는 수가 의미 있다는 생각에 다섯 가지가 갈라지면서 올라가는 성화봉을 내놓았다.
일찌감치 완성된 성화봉 디자인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좋은 평가 속에 공식 성화봉으로 채택됐다. 그러자 평창조직위에서 성화대 디자인까지 의뢰했다.
김 대표가 제시한 후보군 중 하나가 달항아리였다. 길고 흰 다섯 가지가 풍만한 몸체의 달항아리를 살짝 떠받치는 모양의 성화대는 작년 말 완성됐다. 70cm의 성화대와 30m 높이의 성화대는 자세히 살펴보면 그 모양이 닮았다.
김 대표는 "달항아리는 우리나라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라면서 "여기에 '5'라는 세계적인 콘셉트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빙판에 선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얼음꽃에 지핀 불꽃이 달항아리 성화대를 밝히는 모습을 보면서 김 대표는 울컥했다고 했다.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운 퍼포먼스와 제가 디자인한 성화대가 아주 매칭이 잘 됐어요. 김 선수가 흰색 유니폼을 입고 했는데, 우리 고유의 백자도 흰색 아닙니까."
점화대와 성화대를 30개 굴렁쇠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도 김 대표가 회의에서 처음 제안한 것이다. 그는 하계, 동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나라가 몇 개 되지 않는만큼 1988년과 2018년 사이 30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세계인에게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성화 점화 장면 아닐까요. 김연아 선수의 공헌도 크지만, 저 김영세의 공헌도 있습니다. 허허."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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