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이웃과 공동 차례상 차릴 생각도
(포항=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집에도 못 들어가는데 애들을 어떻게 오라고 하겠습니까."
지난해 11월 경북 포항에서 일어난 강진으로 흥해체육관에 대피해 생활하는 이재민 윤모(77)씨는 올해 설은 자녀들과 함께 보낼 수 없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마다 다른 곳에 사는 두 아들과 딸이 설을 쇠러 왔으나 올해는 찾아와도 편한 마음으로 반길 곳이 없어서다.
큰아들이 사는 대구로 가 볼까도 생각했으나 아내가 몸이 아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신 체육관 대피소에서 이웃 5명과 공동으로 차례상을 차릴 생각이다.
윤씨는 13일 "이런 일은 처음이라 뭐라고 할 말이 없다"며 "아들이 설 전에 대피소에 미리 다녀가겠다고 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신모(76)씨는 포항 남구에 사는 아들 집에서 설을 쇨 계획이다.
같은 포항이나 북구보다는 지진 영향이 덜한 곳이기 때문이다. 명절을 아들 집에서 보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집에서 설을 못 쇠니 아들 집에 가서라도 차례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모(49)씨는 경남 진해에서 홀로 사시는 어머니 댁으로 설을 쇠러 갈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는 매년 어머니께서 흥해읍 아들 집을 찾아 설을 보냈다.
그는 "집에 금이 가고 불안한데 차마 어머니를 모실 수 없을 것 같다"며 "전국 곳곳에 사는 형제도 어머니 댁에 모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흥해체육관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은 하나같이 코앞에 다가온 설 명절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어디로 갈지 미리 결정한 사람도 있으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도 많다.
자식 집으로 가자니 온 가족이 모일 만한 공간이 여의치 않고, 자식더러 흥해로 오라고 하자니 지진 공포가 손사래를 치게 한다.
포항시는 이를 고려해 대피소에서 설을 보내는 이재민을 최대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대피소에서 설을 쇠야 하는 이재민을 위해 합동 차례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yongm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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