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학습지도요령에 '독도는 일본땅'…아베, 교단의 극우화 '폭주'
위안부문제·대북 대응 갈등에 독도 도발까지…냉각 가속화 '불가피'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왜곡된 주장을 의무적으로 담게 하는 도발을 감행해 안 그래도 삐걱거리는 한일관계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사사건건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데 더해 독도 도발까지 쏟아내 양국간 관계 회복을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학습지도요령은 일본 정부가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는 최저한의 학습 내용을 정해 놓은 기준으로, 교과서를 제작시 의무 준수 사항인데다 교육 현장에서 수업하는데에도 꼭 따라야 하는 것이라서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 10년 전엔 韓반발 수용했던 日, 이번엔 대놓고 '독도 도발'
일본 문부과학성이 14일 발표한 고교 학습지도 요령 개정안에는 처음으로 사회과 3개 과목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들어갔다.
'지리총합'과 관련해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는 고유의 영토라는 것을 다룬다', '역사총합'에 대해 '독도, 센카쿠열도의 편입을 다룬다'고 명기했다.
또 '공공(公共)' 과목에 대해서는 '일본이 독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다룬다'고 명시했다.
공공 과목은 영토 문제 등을 다루는 과목으로 올해 처음 필수 과목으로 신설됐다. 아예 별도의 과목을 만들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왜곡 교육에 집중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미 작년 3월 초중등학교 학습지도요령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넣은 바 있어 이번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으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각급 학교의 교실에서의 왜곡된 영토 교육을 할 체계를 갖추게 됐다.
일본 정부의 이번 '독도 도발'은 10년 전인 2008년 12월 현재의 학습지도요령을 만들 때 한국의 반발을 고려해 관련 내용을 삭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한국 정부가 대사(권철현)를 소환하고 다각도로 학습지도요령에 독도 관련 내용을 기술하지 말도록 요청하자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를 우려해 독도와 관련한 직접적인 내용을 삭제하고 대신 각 고교에서 영토 교육을 하도록 하는 수준의 내용만 학습지도요령에 넣었다.
지금이 당시와 다른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5년이 지나면서 교단에서의 극우주의 역사·영토관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정부는 중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2014년1월), 초중학교 학습지도요령(2017년3월), 초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2017년 6월)에 잇따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얘기를 넣었다.
그러는 사이 독도 도발을 담은 교과서는 점점 늘어났고 교단에서는 독도 도발을 가르치는 교사가 많아졌으며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다케시마=일본땅'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쌓여갔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5일에는 도쿄(東京) 한복판 히비야(日比谷)공원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 자료로 채워 넣은 전시관을 오픈하고 '독도 도발'에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지자체 차원을 넘어 일본 정부가 이런 식의 홍보관을 설치하는 것은 처음으로, 독도 도발이 극으로 향해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 투트랙 외교 물건너가나…한일 관계 '악화일로'
사실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잇따라 교과서와 관련한 독도 도발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정도 예견되던 일이었다.
아베 정권이 교단에서의 영토 왜곡 교육을 채찍질하는 사이 작년 3월의 고교 교과서 검정에서는 검정을 통과한 24종의 교과서 중 19종(79.2%)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이 실렸었다.
하지만 학습지도요령이 일본 교과서 검정의 가장 상위에 위치한다는 무게감을 고려하면 이번 독도 도발의 파급력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교과서 도발과 관련해 지난 2001년 4월(최상룡 대사)과 2008년 7월(권철현 대사) 등 2차례 주일대사를 한국으로 불러들인 바 있다.
이번 독도 도발은 이미 작년 초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와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의 소환 이후 냉각기기 계속되고 있는 한일 관계를 한층 더 얼어붙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부 피해 문제를 둘러싸고는 우리 정부의 '진심이 담긴 사죄' 요구에 일본 정부가 "1㎜도 움직일 수 없다"고 맞서며 양국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아베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찾아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을 하면서 '투트랙 외교'의 부활 가능성이 주목됐지만, 일본 정부가 다시 교과서 도발을 하며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은 만큼 양국 관계가 더 심하게 삐걱거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평창에서 2015년 양국 정부간 위안부 합의와 한미 연합훈련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평창에서 문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한 것에 대해 "약속을 지키라"고 맞서며 갈등을 부추겼다. 그는 특히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재개를 촉구하면서 내정과 관련된 문제까지 건드리며 우리 정부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국을 포함해 공조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도 나오지만, 남북한 대화 국면에서 일본이 '북한에 대한 압력 강화'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만큼 한일 관계는 앞으로도 악화일로를 걸을 여지가 많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 정부는 연일 북한의 유화 제스처를 '미소 외교'라고 폄하하며 대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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