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딜레마' 빠진 서방…국제문제해결 열쇠 쥔 문제아

입력 2018-02-19 09:55  

'러시아 딜레마' 빠진 서방…국제문제해결 열쇠 쥔 문제아
미 대선개입·서방 민주주의 위협에 규탄 목소리 고조
시리아·우크라·북핵 사태 등에선 영향력 강한 키플레이어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냉각기에 접어든 미국과 대서양 건너 유럽이 서구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러시아의 지속적인 시도를 비판하면서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 주말 유럽 최대 규모의 연례 국제안보회의인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미국과 유럽 각국 대표들은 앞다퉈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지만, 이는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어 서방 각국의 고민이 깊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미국과 유럽이 뮌헨 회의에서 러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으나 여러 국제문제에 러시아가 열쇠를 쥐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핵보유국인 데다 시리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 중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언제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러시아를 빼놓고는 국제 분쟁 해결 노력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랑크 바케 옌센 노르웨이 국방장관은 "러시아를 빼놓고는 정치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며 "우리는 정치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지점에 도달해야 하며 이런 면에서 러시아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미국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러시아인 13명이 지난주 미국에서 기소된 것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과 관련, 러시아를 '악당'으로 규정하고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회의에 참석한 미국 측 안보 담당자와 의원들은 러시아 정부가 미국의 대선 개입 의혹을 끝까지 부인하는 데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러시아 관계자들이 참석하고, 러시아 정부는 매년 그저 사실을 반박하기 위해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과는 별개로 각국 정부는 막후에서 러시아와의 외교 채널 가동에 여념이 없다.
알렉세이 푸쉬코프 러시아 상원 의원은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러시아, 터키, 미국, 이스라엘 간 외교 채널을 언급하면서 "가동 중인 외교적 네트워크가 있다"며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면 더 큰 충돌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핵 합의를 이끈 존 케리 전 미 국무장관도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외교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사안을 "구분 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서방 각국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국제적인 위기 상황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 이스라엘의 적국인 이란과 동맹을 맺고 있으며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러나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러시아산 방공 무기 수입 협상을 매듭지으려 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묵인 아래 시리아 북서부 아프린 일대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 공습에 나섰다.
아시아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유럽 각국이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추진해왔으나 러시아는 줄곧 반대해왔다.
이처럼 국제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 상황에 대해 노르웨이의 옌센 국방장관은 "몇 년 전만 해도 특정 위기 상황에 대해 논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한 가지에 대해 논의하다가는 다른 문제들까지 뒤흔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으나 반대편 뉴욕 유엔 본부에서는 이란 정부를 규탄하려는 영국, 미국, 프랑스의 노력이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뮌헨 회의에서는 미국과 유럽 각국 대표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분쟁 사태 해결을 위해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논의가 진전을 보인 반면 커트 볼커 미 국무부 우크라이나 협상 특별대표는 "모든 게 러시아 정부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인정했다.
9년 전 뮌헨 회의에 참석했던 조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은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을 약속했으나 서방 각국은 나토군의 유럽 동부 확장과 구소련의 붕괴에 대한 러시아의 분노가 얼마나 깊었는지는 알아채지 못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서방 외교가에 따르면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한 데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로 서방 각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냉전 이후 최악인 상황에서 관계 개선의 기미마저 보이지 않고 있다.
mong0716@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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