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편의 부인살리기'로 베를린영화제 남우주연상 받고도 생활고
(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2013년 세계적 영화제인 베를린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보스니아 집시 출신 영화배우 나지프 무직이 48세를 일기로 숨졌다.
영화배우로서는 성공했지만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했기 때문이다.
나지프 무직의 형제는 "그가 지난 18일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20일 AFP통신에 따르면 그는 보스니아 스바토바치의 한 가난한 고향 마을에서 지내다 숨졌다.
최근 수개월 사이 건강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그의 형제는 "그가 재정 문제 때문에 매우 힘들어했다"며 "지난 1월 독일로 가려고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보스니아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가 주연한 영화는 '어느 남편의 부인 살리기'(An Episode in the Life of an Iron Picker)였다.
영화에서 무직은 아이를 유산한 부인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연기를 펼쳤다.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 이외에 그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은곰상)을 받았다.
그는 영화배우로서는 성공했지만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돈 몇 푼 벌려고 고철을 수집하는 옛날 직업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무직은 급기야는 지난 1월 가족 부양을 위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받은 은곰(Silver Bear) 트로피를 5천 달러(530만원 상당)에 내다 팔았다.
그는 트로피를 처분하면서 "(돈을 구하려고) 오래된 차를 팔았고 이어 개인 물품을 팔아치웠다"면서 "은곰 트로피를 팔아치우는 것은 매우 힘든 결정이었지만 아이들이 3일간 거의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영화제 주최 측은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매우 슬프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무직은 2014년 가족들을 절망에서 구해내기 위해 독일 망명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지난 1월 은곰 트로피를 팔아서 만든 돈으로 베를린 행 버스 승차권을 구입했다.
베를린에 가서 주최 측에게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직은 베를린영화제 시작 전 집으로 돌아왔다.
갚을 방법이 없는 벌금 부과 소식을 듣고 난 이후였다.
무직의 장례식은 21일 치러진다고 그의 형제가 말했다.
보스니아에는 7만5천 명에 이르는 집시들이 살고 있다.
보스니아의 한 비정부기구(NGO)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정규직 취업자는 5% 정도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16년 집시들이 보스니아에서 "가장 취약한 그룹"으로 남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구직 활동과 교육, 정치에서 광범한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15일부터 열리고 있다.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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