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방송 중단 위한 선제조치 의심…北 오판 우려"
軍, '확성기 사업 비리' 감사원 감사에는 재심청구 방침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군의 최전방 지역 대북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이 모두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을 향해 김 위원장을 대놓고 공격하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대북확성기 운영을 담당하는 국군심리전단에 "'김정은'을 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이 22일 심리전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합참은 지난해 월간 단위의 '심리작전지침'을 통해 대북확성기 방송에서 김 위원장을 언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방송 내용을 조율하는 합참 심리전위원회는 일선에서 방송을 제작하는 PD와 작가들이 이 같은 지침을 준수하도록 주간 단위로 통제했다.
심리전단은 김 위원장을 직접 거론하는 대신 "미사일 시험 발사에 예산을 많이 써서 주민들이 고생한다", "고위층은 호의호식하는데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정도로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수위를 크게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심리전단은 또 최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의 남북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등의 뉴스를 상세히 전하며 남북한의 '민족동질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김 위원장의 독재 정치를 강도 높게 비판해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던 지난 정부의 대북확성기 방송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심리전단은 현재 군사분계선(MDL) 남쪽 최전방에서 신형 고정식 24대와 구형 고정식 16대 등 40대의 대북확성기를 가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담화, 뉴스, 드라마, 음악 등 4가지 프로그램을 편성해 하루 20시간씩 방송한다.
심리전단 관계자는 "대북확성기 방송 내용이 일부 바뀌었지만, 소리 크기나 전체 방송 길이에는 변함이 없다"며 "기기 가동률도 80∼90%로 과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대북심리전의 최후 보루인 대북확성기에서조차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빠진 것은 북한에 대해 현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저자세의 결정판"이라며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위한 선제조치로도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반도 위기 상황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데 군 당국이 먼저 경계를 느슨하게 풀게 되면 자칫 북한이 오판할 수 있다"며 "더 완벽한 경계·안보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심리전단은 소속 직원들이 2016년 대북확성기 도입 당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와 관련해 오는 28일 재심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전단은 현재 운용 중인 일부 대북확성기의 성능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감사원 지적에 대해 "지난해 자체 전력평가 당시 적합 판정이 나와 문제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이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최근 대북확성기 사업 비리를 엄단하겠다고 밝힌 것과 상반된 대응이라는 것이 김 의원의 지적이다.
송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감사 결과에 따라) 필요하면 엄격한 수사를 해달라'는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의 주문에 "전반적으로 특검 같은 조직을 만들어 수사를 하고 뒷배경까지 살펴 적법한 절차를 취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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