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미국 폐광촌·소도시의 '본보기' 될까"

입력 2018-02-22 09:45  

"강원도 평창, 미국 폐광촌·소도시의 '본보기' 될까"
AP통신, 용기있는 올림픽 유치 전후 명암 집중 조명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폐광지대 산간 농촌마을'에서 '세계인을 불러 모은 올림픽 도시'로 변신한 강원도 평창이 미국 폐광촌·소도시에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폐막을 앞두고 미국 AP통신은 "2030 켄터키 동계 올림픽? 한국이 '소도시 올림픽'이란 '도박'을 '수출'하게 될까"(Kentucky 2030? Could Korea export its rural Olympic gamble?)라는 제목의 정선발 기사를 통해 '과거 석탄산업 중심지'에서 '카지노촌'을 넘어 '올림픽 무대'로 도약한 강원도의 명암을 집중 조명했다.
이들은 "평창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강원도는 미국의 폐광 지역과 마찬가지로 열악한 경제 사정, 노화된 인프라, 인구 유출 현상을 겪어왔다"며 "그럼에도 최근 산기슭에 2018 동계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이 세워졌고,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국인이 아닌 이들은 평창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림픽 개최권을 따내기 전까지 강원도라는 지명을 거의 들어본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사실 올림픽은 막대한 투자에 비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초대형 행사여서 세계적인 도시, 유명 리조트 타운이나 도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치위는 올림픽 유치를 강원도에 절실히 필요한 인프라 투자와 교통수단 업그레이드, 자존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목표를 찾을 기회로 강조했다"면서 "이 구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의 탄광촌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 찾은 켄터키 출신 매디 보이드는 "트랙터가 다니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운전하다 보니 마치 고향에 있는 듯한 기분"이라며 "평창을 통해 미국의 '언더독'인 켄터키주도 언젠가 올림픽 개최 영광을 추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켄터키 주 탄광촌 화이트버그의 '농촌전략센터' 설립자 디 데이비스는 강원도 태백산맥 지역이 애팔래치아 산맥에 접한 켄터키·웨스트버지니아 일대처럼 험준하고 고립된 산골인 데다 사회 기반 시설이 낡고,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라며 "남북 군사분계선에 인접해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림픽과 연관 짓기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뜻을 세우고 의지를 보여준 결과,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면서 "용기 있고, 도발적이기까지 한 일"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기사는 올림픽 개막 이전부터 제기된 '폐막 이후'에 대한 강원도민들의 우려에도 초점을 맞췄다.
정선군 사북읍의 사북석탄유물보존관 자원봉사자 여봉규 씨는 "올림픽 개최가 기쁘지만, 이는 일회성 행사이고 즐기고 나면 끝이 난다"며 대회 이후를 염려했다. 광부의 아내로 석탄 채취가 한창이던 시절부터 사북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임수자(72) 씨는 "폐광 후 대부분 주민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있는 지역 현실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의문을 제기했다. 30년 전 서울 인근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이상규(52) 씨는 "올림픽 시설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누가 계속 남아있겠나"라고 말했다.
평창과 미국 소도시의 다른 점으로 제시된 것은 정부 지원. "미국 정부는 올림픽 입찰에 자금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설이 탄탄히 갖춰져 있거나 엄청난 투자금을 감당할 수 있는 도시만이 올림픽 개최의 꿈을 꿔볼 수 있다"면서 "일례로 오클라호마 주 털사는 2024 하계 올림픽 유치 경쟁에 발을 담그려다 '귀여운 발상' '망상'이라는 반응을 얻은 바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 130억 달러(약 14조 원) 예산을 마련했다. 이와 관련 AP는 "폐막 후 올림픽 시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앞서 올림픽을 치른 도시들의 선례를 보면 행사 후 쓸모는 없고 유지에만 매년 수백만 달러씩 소요되는 '흰 코끼리'로 전락하기도 한다"며 일각에서는 "강원도가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 있다"는 걱정마저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강원도가 1990년대에 폐광 반대 시위를 벌인 대가로 한국에서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 사업 허가를 얻었고, 주민들은 폐광에 세워진 거대 카지노가 새로운 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카지노 리조트 강원랜드가 들어선 사북 인구는 계속 줄고 있고, 모텔·마사지업소·전당포의 네온사인만 번쩍이는 유령도시 같은 도박꾼들의 목적지로 변해있다면서 "주민들은 '카지노마저 문을 닫으면 마을은 사라질 것'이라 말한다"고 부연했다.
강원도에 뿌리를 둔 이들은 올림픽 개최를 통해 자부심을 회복하길 소망하고 있다는 분석도 포함됐다.
버려진 막장 입구에 써있는 '나는 산업전사 광부였다'라는 문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군부 독재 정권하에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한 말이라며 "이들의 실상은 버려지고 상처받은 느낌을 안고 살아가는 켄터키·웨스트버지니아 폐광촌의 광부들과 비슷하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강원도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며, 전 세계인 누구라도 한번 와서 자연과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면 좋아하게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고, 이것이 올림픽 유치의 힘이 됐다는 진단이다.
화이트버그 농촌전략센터 데이비스는 "이들은 세계를 향해 '한번 와보라'고 요청했다. 애팔래치아 산촌 같은 미국 소도시 주민들이 배울만한 점"이라며 "도박 같은 일이지만, 약한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켄터키주는 2030년 동계 올림픽 유치에 나서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초대형 경기장과 대규모 숙박시설 건설 문제를 생각하면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못 된다. 하지만 또 다른 특별 행사를 유치함으로써 전환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hicagor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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