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이후 두 차례 방북으로 北개방 문 열어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21일(현지시간) 향년 99세로 소천한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 대부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북한에 많은 애정을 쏟은 대표적 교계 지도자로 꼽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한 기사에서 최근 북핵 위기 속에서 북미 간 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시점에 그레이엄 목사가 생전 적극적으로 펼쳤던 대북 중재 역할에 특히 관심이 쏠린다고 소개했다.
WP에 따르면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1992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냉전 종식 이후 비틀대던 북한을 방문한 첫 외국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방북은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그때까지 북한을 방문한 외국 고위급 인사들을 통틀어 사실상 첫 '비(非)공산주의자'로도 불렸다.
당시 방문에서 그레이엄 목사는 김일성대학에서 강연하고 김일성을 직접 만나 면담도 했다.
방북 전 그는 조지 H.W.부시 당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을 만나 의견을 조율하고, 방북 후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김일성에게 전달하는 등 사실상 미 정부의 비공식 특사 역할을 했다.
그는 1994년 북핵 위기로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의 전쟁까지 계획했을 때 다시 한번 방북길에 올랐다.
당시 방북길에 동행한 스티븐 린턴 유진벨재단 대표는 이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그레이엄 목사는 마치 마을 어른을 이해시키는 듯한 방식으로 김일성에게 (북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결국 김일성은 핵 시설에 대한 국제 사찰 허용에 동의했고, 몇 달 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위해 방북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은 이후 카터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최근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까지 미국 인사들의 잇따른 방북 길을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방북은 북한 선교 및 구호 활동을 본격화하게 한 계기로도 작용했다.
미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는 지난 2012년 기사에서 미국 정부와 협력해 대북 식료품 제공 등 구호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 5곳 가운데 4곳이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라고 소개했다.
2010년 북한 최초의 사립대학으로 개교한 평양과학기술대도 기독교계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그레이엄 목사는 독실한 보수 복음주의자 또한 반(反) 공산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이렇듯 북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는 자신의 방북을 '십자군'에 비유하면서 기독교를 탄압하는 '은둔 왕국'에 복음이 전파되기를 소원했고, 정치·외교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희망했다.
김일성 사후 그는 "김일성을 직접 만나 보니 그가 강력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왜 그가 북한 주민들로부터 그렇게 높은 존경심을 얻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친북' 행보는 종종 논쟁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북한 노동신문이 그레이엄 목사가 김일성을 '오늘날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신(God)'이라고 지칭했다는 보도를 해 논란이 일자, 그레이엄 목사 측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2005년 출간된 저널리스트 브래들리 마틴의 저서 '아버지 지도자의 애정 어린 보살핌 아래서:북한과 김씨 왕조'(Under the loving care of the fatherly leader:North Korea and the Kim Dynasty)에 등장하는 한 탈북자는 "그레이엄 목사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북한의 종교를 알고 싶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가보라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y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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