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 무산됐지만 대화의지 확인 평가…'의미있는 대화' 만들기 주력
트럼프, 문 대통령과의 통화 후 '北회동 제안' 수용 결심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평창동계올림픽 참석차 서울에 들른 북한과 미국 고위급 대표단 간 회동이 성사 직전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청와대는 공식 언급을 삼간 채 신중한 대응기조를 보이고 있다.
북미 최고위급 사이에서 진행된 '특급비밀'을 놓고 청와대가 어떤 식으로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회동이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조심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다만 이번 회동의 무산으로 인해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제동이 걸렸다는 식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데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표정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회동이 불발된 것이 앞으로 북미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미대화가 성숙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바꿔 말해 일단 양측이 어떤 식으로든 대화 테이블에 앉으려고 시도한 것 자체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북미 최고위급 회동이 불발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오히려 여건을 성숙시키며 더 의미있는 대화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점이 될 수 있다는게 청와대의 해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측이 만나 대화하는 자체보다 어떤 내용으로 대화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례로 양측이 이번에 만났을 때 비핵화 문제 등을 놓고 직설적으로 충돌했을 경우 북미 간의 거리가 더 벌어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펜스 부통령은 이 만남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강조할 기회로 삼으려 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번 회동 시도를 계기로 북미 정상 차원의 대화 의지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기대감을 내보이고 있다.
북한 측이 올림픽 개회식 2주 전에 미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백악관에 전달한 것은 물론, 미국이 이를 수락한 것 자체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대화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펜스 부통령,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회의를 해 북한의 회동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밤(현지시간 2일 오전)에 문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며 "펜스 부통령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올림픽 기간에 북한과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모이는 만큼 이를 대화의 모멘텀으로 삼아 달라는 적극적인 주문으로, 문 대통령이 김 제1부부장과 펜스 부통령의 만남을 직접 설득했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통화를 마친 다음 참모들을 집무실로 불러 모아 이 자리에서 북한의 회담 제의에 응하기로 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북미 양측의 대화 의지가 작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에 필요한 여건인 북미 대화가 실효성 있게 성숙되는 데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 측이 예정된 회동 시간을 2시간도 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취소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펜스 부통령이 방한 기간 탈북자 가족 등을 만나며 북한의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해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중재외교에 나선 청와대로서는 앞으로 비핵화와 인권 등 북미관계의 걸림돌로 부상한 이슈들을 놓고 양측의 입장을 절충해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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