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몸통'으로 여겨졌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작년 4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지 311일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영훈 부장판사)는 직무유기 등 공소가 제기된 주요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 6개월을 언도했다. 검찰은 징역 8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의 양형은 훨씬 낮았다. 이제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51명의 피고인 가운데 우 전 수석을 포함한 49명이 1심 선고를 받았다. 남은 건 박 전 대통령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두 사람이다. 어느덧 이 사건의 1심 재판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혐의 중 핵심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이다. 재판부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비위를 알고도 감찰 직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부분을 중요하게 봤다. 특히 재판부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최 씨와 안 전 수석이 관여했다는 언론보도가 2016년 7월부터 나오기 시작한 점을 중시했다. 그 정도 언론보도가 나왔으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응당 조사해야 했다는 것이다. 우 전 수석은 심지어 안 전 수석의 요청에 따라 재단 설립에 문제가 있는지를 검토하고도, 최 씨 개인 문제이며 그나마 '확인된 게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냈다. 재판부는 "안 전 수석 등의 적극적 은폐 활동에 가담해 국가 혼란을 더 악화시킨 결과를 초래했다"고 우 전 수석을 질타했다. 우 전 수석의 감찰 직무 유기를 '은폐 가담'으로 간주한 셈이다. 그밖에 2016년 7월 자신의 개인 비위를 감찰하던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의 직무수행을 방해한 혐의, CJ E&M 고발 의견을 내도록 공정위를 압박한 혐의, 2016년 10월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거부한 혐의 등도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7명의 좌천성 인사를 김종덕 전 장관에게 요청한 혐의, 작년 1월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의 금융권 인사 증인신문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는 무죄로 나왔다. 전자는 문체부 내 파벌 문제와 인사 특혜 의혹을 바로잡는 조치였다는 것이고, 후자는 국회의 출석 요구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정치권 등에서 우 전 수석에 붙인 별명이 '법률'과 '미꾸라지'를 합성한 '법꾸라지'다. 그만큼 법망을 잘 빠져나간다는 뜻일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드러난 우 전 수석의 행적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우 전 수석은 2016년 7월 자신의 처가와 넥슨 사이의 의심스러운 부동산 거래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청와대 감찰과 검찰 수사의 대상에 올랐다. 한번 봇물이 터지자 아들의 운전병 특혜 의혹 등이 꼬리를 물었다. 그 후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 '최순실 의혹 특별수사본부'가 소환 조사를 거쳐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번번이 기각됐다. 우 전 수석은 검사 앞에서 팔짱 끼고 웃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돼 '황제 소환'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불구속 재판을 받던 우 전 수석이 구속된 것은 작년 12월 검찰 국정원 수사팀이 청구한 세 번째 영장에 의해서다. 혐의도 앞서 조사받은 것과 상관없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을 통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결과를 보고받았다는 것이었다. 우 전 수석은 구속된 지 2주 후 구속적부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번엔 법원이 청구를 기각했다. 거의 1년 반 동안 법망을 피해온 '법꾸라지'의 말로였다.
우 전 수석은 실형을 받은 뒤 변호인을 통해 항소할 뜻을 밝혔다. 그는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표적수사다. 과거 검사로서 처리한 사건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고, 직무권한을 벗어나지 않는 정당한 업무 처리였다는 주장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유죄 판결에 붙여 "일말의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로 변명으로 일관하고 반성하지 않았다"고 그를 꾸짖었다. 이날 판결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대체로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국민 정서에 형량이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이 재판은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우 전 수석은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자신의 태도가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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