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나간 한국인 지도자들 다같은 심정"…2014년부터 헝가리 대표팀 조련
(강릉=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5,000m 계주 결승전이 열린 22일 저녁 강릉 아이스 아레나.
제일 먼저 결승선을 끊고 들어온 헝가리 선수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기뻐하던 헝가리 대표팀 코치진 가운데는 한국인 전재수(49) 코치가 있었다.
한국 남자 대표팀이 경기 도중 넘어진 탓에 '노메달'로 고개를 숙일 때 맞은편에서 또 다른 한국 지도자는 환희에 젖었던 셈이다.
아이러니한 광경이지만 한국 쇼트트랙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 대표팀에 포진해 온 만큼 주요 국제 대회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대표팀 주자 임효준(한국체대)이 넘어지는 순간 속상한 마음부터 들었다고 했다.
전 코치는 경기를 마치고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이 넘어질 때 굉장히 안타까웠다. 한국과 같이 메달을 다투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운 장면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 지도자들은 늘 한국이 가장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그게 당연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까움도 잠시. 중국, 캐나다와 벌이는 3파전이 된 만큼 그는 이참에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헝가리는 중국을 제치고 치고 나가더니 2바퀴를 남기고는 대표팀 에이스인 사오린 샨도르 류(22)가 캐나다마저 따돌리고 역주,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했다.
헝가리 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금메달의 주역인 사오린은 곧바로 자신의 애인이자 영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인 크리스티 앨리스에게 달려가 키스하는 장면이 중계방송을 타 눈길을 끌었다.
이어 간이 시상식이 끝나고는 이번 평창 대회서 다리를 다쳐 깁스한 크리스티를 안고 직접 시상대에 데리고 가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노메달'에 그친 애인의 안타까움을 달래주려는 행동이었다.
마치 부스터를 단 것처럼 거침없는 질주를 보인 사오린의 원동력은 바로 전 코치에게서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날 앞서 열린 500m 준결승전에서 스케이트 날이 부러지는 바람에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전 코치가 새로 손질해 준 예비 스케이트 날을 달고 훨훨 날았던 것.
전 코치는 "두 형제의 기량이 뛰어나서 메달 하나 정도는 바랐는데 지금까지 하나도 못 건져 매우 위축됐던 게 사실"이라며 "헝가리의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쇼트트랙에서 탄생시키게 돼 너무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미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었다. 2014년부터는 헝가리 대표팀의 제의를 받고 코치에 부임, 3년 넘게 헝가리 선수들을 조련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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