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컬링의 미래, 우리에게 달렸다"…사명감으로 싸운 평창올림픽
많은 유행어 남기며 평창 최대 히트상품
(강릉=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메달밭' 쇼트트랙도, '슈퍼스타들의 무대' 피겨스케이팅도, 빙속 여제의 스피드스케이팅도 아니었다.
작은 농촌 경북 의성에서 자란 소녀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 컬링이었다.
의성여고에서 방과 후 특기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김)영미와 영미 친구(김은정), 영미에게 물건을 전해 주러 컬링장에 왔다가 얼떨결에 컬링을 하게 된 영미 동생(김경애), 영미 동생을 따라 컬링에 뛰어든 영미 동생 친구(김선영), 나중에 합류한 영미 동료(김초희)의 아기자기하고도 위대한 도전의 이야기는 전 국민을 열광시켰다.
이들은 불모지 한국에서 '풀뿌리 스포츠'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한국 컬링의 성공은 척박한 환경에서 꽃을 피워냈다는 점에서 기적에 가깝다.
지난 2006년 경북 의성에 '의성 컬링센터'가 들어서기 전까지 국내에 컬링전용경기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컬링대표팀 선수들은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고, 팬들의 응원도 없었다.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기 일쑤였다.
선수들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었지만, 자신의 손에 컬링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명감으로 스톤을 굴렸다.
여자대표팀 김민정 감독은 여자 컬링 결승전을 앞두고 "우리는 컬링 역사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 책임감을 느끼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컬링대표팀은 평창올림픽에서 역사를 써내려갔다.
예선에서 1위(8승 1패)로 한국 컬링 사상 첫 4강에 올랐고, 준결승에서 아시아의 강호 일본을 연장 접전 끝에 꺾으면서 온 국민을 울렸다.
컬링여자대표팀은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결승 스웨덴과 경기에서 3-8로 패해 무릎을 꿇었지만, 그들이 보여준 땀과 눈물은 큰 여운을 남겼다.
한국 컬링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컬링이 남긴 건 성적, 메달뿐만이 아니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스토리는 인터넷에서 콘텐츠로 재생산돼 평창올림픽 최대 히트상품이 됐다.
스킵(주장) 김은정이 스톤을 던진 뒤 스위핑 방향과 속도를 지시하면서 외치는 김영미의 이름, '영미'는 국민 유행어가 됐다.
억양과 톤에 따라 작전이 바뀌어 '영미 단어 설명서'까지 등장했다.
정작 김영미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대회 기간 중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미'를 외치는 김은정 어머니의 이름도 '김영미 씨'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안경 선배'라는 별명도 화제에 올랐다. 눈에 띄는 안경을 끼고 선수들을 아우르는 김은정의 모습이 1990년대 인기 만화 슬램덩크의 안경 선배(권준호)와 닮았다 해서 지어진 별명이다.
미국 USA투데이는 김은정이 안경을 쓰고 빙판을 지배한다며 정체를 숨기려고 안경을 쓰는 슈퍼맨과 비교하기도 했다.
김은정이 쓴 안경 모델이 평소보다 주문량이 5배가 늘어났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포커페이스 김은정의 변하지 않는 표정도 화제가 됐다. 김은정은 경기 중 일희일비 하지 않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좋은 샷이 나와도 냉철함을 잃지 모습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경기 도중 무표정한 모습으로 바나나를 먹는 모습도 크게 화제가 됐다.
프랑스 유력지 르 몽드는 김은정 특유의 냉정한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가 돼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여자컬링대표팀은 출신지인 의성의 특산물을 따 '마늘 소녀들'로 불렸다.
이들은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고된 훈련 뒤 도란도란 앉아 의성 마늘 치킨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정작 선수들은 마늘 소녀라는 별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김민정 감독과 다섯 선수의 성을 딴 '팀 킴'으로 불러달라는 요청을 했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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